'실체적 진실' 좇았던 마키아벨리, 시대의 철창을 열다

한겨레 2022. 5. 2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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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임병철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한겨레S] 임병철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
니콜로 마키아벨리

악덕-미덕의 도덕적 경계 허물며
현실 정치세계 실제적 진실 탐색
당위보다 권력 자체에 천착하며
반도덕주의 화신이라는 오명도
15세기 후반 산티 디 티토가 그린 마키아벨리의 초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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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아주 다른 문제이다. 그렇기에 ‘행해져야 하는 것’을 위해 ‘행해지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보존은커녕 오직 파멸만을 배우게 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렇듯 적나라하게 권력과 정치의 실상을 폭로했다. 어쩌면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군주론>의 이 구절보다, 그의 현실주의가 더 극명하게 표현된 곳은 찾기 힘들지 모른다. 당위와 현실을 구분하면서, 그가 추상적인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권력이 무자비하게 작동하는 현실 정치 세계의 “실제적 진실”을 찾으려 했다는 점이 여기에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좋은 군주와 나쁜 군주란 무엇인가

마키아벨리는 1469년 그리 부유하지는 못하더라도 비교적 유서 깊은 피렌체의 중산층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 아래 일찍부터 휴머니즘 교육을 접했던 그는, 그것을 발판 삼아 서른 즈음 공직에 들어섰지만 이내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로렌초의 사망 이후 수립된 사보나롤라의 신정주의 정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대체하고 새로이 복원된 공화정부, 그리고 마치 도미노처럼 그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피렌체의 권력을 또다시 움켜쥔 메디치 정권의 재등장이라는 정치적 격랑 속으로 그의 삶이 내동댕이쳐지곤 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야말로 그리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정치형태의 변화를 지근거리에서 목격하고, 결국 그 와중에서 뼛속 깊이 좌절해야 했던 흔치 않은 인물이다.

분명 그런 경험의 소산일 테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관통하는 주제는 ‘정치권력’ 그 자체였고, 그는 그것을 대담하면서도 심지어 불경스러워 보이는 언어로 풀어냈다. 무엇보다 그가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문제에만 천착할 뿐,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라는 전통적인 정치사상의 주제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탓이다. 흔히 마키아벨리를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반도덕주의자나 기회주의자로 폄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이름(니콜로)을 빗댄 ‘올드 닉’(Old Nick)이라는 말이 오늘날까지도 악마라는 뜻으로 사용될 만큼 마키아벨리는 반도덕의 교사이자 대명사로 오해되고 있다.

우피치 회랑에 있는 마키아벨리의 동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하지만 <군주론>에서 종종 발견되는 과장과 비약 혹은 여러 모순적인 주장들을 고려하면, 그를 한마디로 일갈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다. 한편으로는 이 논쟁적인 저작이 군주나 정치체제에 대해 다룬 여러 고전적 저작 그리고 그것에 기초해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군주를 위한 귀감서’의 전통 속에서 집필되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에 대한 일종의 도전적 반향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유의 삐딱하고 반항적인 성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좌절한 정치인의 냉철한 현실분석에서 기인한 것인지 단언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무튼 마키아벨리는 이후 서양 세계에서 정치에 관한 논의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는 의미 있는 물꼬를 텄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군주론>에 빠져 있는 무언가를 되살리면서 그 물꼬의 시작점에 다가설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 <군주론>에는 고전시대부터 그의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정치논고에 ‘선한 군주’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등장하는 ‘전제군주’(tyrant) 혹은 ‘폭군’이 단 한차례도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이 점에서 <군주론>은 비슷한 시기 그가 리비우스의 <로마사> 첫 열권에 대한 주해의 형식으로 쓴 또 다른 정치저작 <리비우스 논고>와도 비교된다. 이것은 비단 <군주론>이 군주 혹은 군주주의에 관해 논의하는 반면 <리비우스 논고>가 공화제적 가치를 옹호한다는 표면적인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소위 좋은 군주와 나쁜 군주의 경계를 허물면서 그가 정치와 권력의 문제를 도덕적 당위에서 현실의 문제로 끌어내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산타크로체 교회에 남아 있는 마키아벨리의 석관. 위키미디어 코먼스

물론 이는 현실 정치 세계, 특히 다양한 인물들이 경쟁하며 권력을 쟁취하고 잃기를 거듭하던 르네상스의 가변적인 정치극장에서, 선군과 폭군을 엄밀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경험의 산물일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폭군 역시, 상황이 요구하는 한, 정당한 군주가 될 수 있다는 다분히 현실주의적인 마키아벨리의 생각이 바로 거기에서 벼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더욱 정교한 논리로 발전시키면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의 정치사상을 지배하던 도덕담론, 즉 ‘피해야 할 악덕(vice)’과 ‘쌓아야 할 미덕(virtue)’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흐리게 만들었다.

아마도 여기에는 인간은 “배은망덕하며 변덕스럽고, 정직하지 못하며 위선적”이라는 마키아벨리 본연의 비관적인 인간관이 숨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인간들이 모인 정치공동체에서 도덕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어도 군주에게 있어, 자신과 공동체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어리석은 행위라는 일갈이다. 이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군주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도덕적 유연성을 권고한다. 일견 일관되지 못한 정치전략, 선택적인 자비나 잔인함이 추상적인 선함보다 더욱 유용하다는 이야기다. 권력은 인간의 나약한 본성과 현실 정치가 강제하는 “필요성”(necessità)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스테파노 우시가 그린 서재에 있는 마키아벨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정치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통찰

그렇다면 마키아벨리에게서 시대의 철창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철창을 깨고 나오려는 마치 모세와도 같은 이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다. 분명 고대의 저작들을 탐닉하고 그것에 기초해 자신의 시대의 병폐를 진단하려 했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에 대한 치유책으로서 ‘비르투’(virtù)를 갖추라고 강조했다. 분별력이나 지혜, 조화나 관대함 그리고 그것들이 내포하던 도덕적 완전함을 의미하던 고전적 의미에서의 덕(virtus)과 달리, 마키아벨리의 비르투는 효율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고 필요에 따라 기민하게 기회를 포착하는 남성적 능력을 뜻한다. 고전을 통해 인간을 교화하려던 휴머니즘의 도덕적 이상에 들려온 낯선 파열음이 아니었을까? 마키아벨리는 그렇게 도덕과 정치를 분리하기 시작했고 또 그러면서, 의도했든 아니든, 시대의 철창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르네상스는 말과 글을 통해 고대 세계를 부활시키려던 지적 운동이었다. 14세기 이후 백가쟁명의 지성사를 검토하는 ‘르네상스와의 대화’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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