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미상발사체'는 없다..돌아온 MB의 외교 황태자 [김인엽의 대통령실 사람들]

김인엽 2022. 5. 2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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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수사대상에서 5년 만에 尹외교 실세로
'대북 강경대응' 변화의 중심에 金 차장이
"국제사회선 밤비보다 고릴라가 낫다"
'공격적 현실주의' 주장 미어샤이머 제자
한·일 군수협정 등 한미일 삼각협력 강조
미·중 균형외교에 "갈등 제로 외교 불가"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오픈라운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박3일 방한 일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미사일) 발사는 오전 6시에 임박해서 일어났는데, 6시 3분에 대통령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10여분 지나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께 유선 전화를 드려 회의체를 어떻게 할지는 점검하고 있으니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출근해 주시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를 드렸고, 6시 30분 정도에 제가 판단해 대통령 임석 하에 NSC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1발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섞어 쏜 지난 25일 국가안보실은 이같은 대응 상황을 기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이날 브리핑을 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자신감 있는 태도로 국가안보실의 대응 상황을 분 단위까지 모두 공개했습니다. 김 차장은 "각 부처 장관님들에게는 알코올이 들어간 음식은 자제하고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렸다"고 하는 등 북한의 도발을 미리 예견한 듯한 여유 있는 태도도 보였습니다. 

동시에 단호한 태도로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한 3가지 원칙도 선언했습니다. 하나는 북한이 발사한 발사체가 ICBM인지, 방사포인지 그 종류를 정확하게 기술한다는 것입니다. 또 북한의 군사 조치가 있을 경우 우리도 상응하는 대응 조치를 취하기로 했고, 이같은 행동은 한미 협조 태세를 통해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 때처럼 '미상 발사체' 또는 '불상 발사체'와 같은 애매모호한 표현은 쓰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한국군과 미군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 각각 현무-2 미사일과 에이테킴스(ATACMS) 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했습니다. 2017년 7월 이후 4년 10개월만에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미 군 당국이 공동 대응한 것입니다.

변화의 중심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년 책사'로 불린 김 차장이 있습니다. 

 '공격적 현실주의' 주창 미어샤이머 교수의 제자

국제정치학자인 김 차장은 서강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 학사 학위를,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각각 받았습니다. 1997년에는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김 차장의 시카고대학교 시절 지도교수였던 '존 미어샤이머'는 국제정치학자로서 그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공격적 현실주의'를 주창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무정부적 상태의 국제정치에서는 밤비보다 고릴라가 되는 편이 낫다." 미어샤이머 교수가 2015년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글에 담긴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국제 질서는 무정부적 상태에 가까우며, 어느 국가도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각자 최대한의 힘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 미어샤이머 교수의 진단입니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공격적 현실주의 성향은 김 차장의 논문이나 기고 칼럼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김 차장은 2017년 8월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 '갈팡질팡 안보 정책, 유연함인가 무능인가'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와 관련된 혼선을 비판하며 "평화는 힘으로 지켜지거늘 안보에 집중하지 않고 평화만 외칠 수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차장이 지난해 학술지 《신아세아》에 기고한 논문 '미-중 신냉전 시대 한국의 국가전략'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김 차장은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을 "미·중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어떤 쪽도 선택하지 않으면서 둘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헤징(hedging) 전략'을 구사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 이웃국을 압도하는 국력을 지니지 못하는 한, 갈등 제로의 헤징 외교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차장은 "한국의 생존을 좌우하는 안보를 먼저 확보하지 못하면 국가의 존망이 위협받게 되고 경제를 포함한 나머지 이익의 문제는 애당초 무의미해진다"고 지적했는데요, 어느 국가든 각자 최대한의 힘을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미어샤이머 교수의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소미아 체결 등 한·미·일 협력 강조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1월 청와대에서 김태효 당시 대외전략기획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차장의 외교관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맹파'에 가깝습니다. 또한 한·미·일 삼각 협력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도 여러 차례 강조해왔습니다. 이 중 한·일 관계에 대한 김 차장의 몇 가지 주장들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유사시 일본 자위군의 한반도 개입'에 대한 주장입니다. 김 차장은 2001년 자신의 논문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역할 : 미·일신방위협력지침을 중심으로'를 통해 "한반도 유사시 재한 일본인의 대피 및 구조활동은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허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대한민국 영토·영해·영공 내 군사활동은 원칙적으로 불허한다는 방침을 천명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습니다.

2006년에는 다시 한번 '한일관계 민주동맹으로 거듭나기' 칼럼을 통해 "자위대를 군대라 칭하지 못하고 외부 세력에 맞서 주권국가로서의 교전권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 영원히 일본이 머물러 있어야만 일본을 평화국가로 인정할 수 있다는 논리는 대단히 편협하다"고 밝혔습니다.

이 외에도 김 차장은 2017년 조선일보에 게재한 칼럼 '한·미·일 안보 협력 말고 다른 길은 없다'를 통해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을 주장했습니다.

김 차장은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 대외전략기획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체결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밀실 협정' 논란이 불거지면서 지소미아 체결이 무산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습니다. 향후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혹은 한·미·일 관계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수사 지휘한 尹과 수사받은 金 악연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당시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 2017년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 차장에게는 악연이 있습니다. 2017년 11월 검찰이 당시 김 차장이 재직 중이던 성균관대 교수 연구실을 압수 수색을 했는데,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 대통령이 이 수사를 지휘한 것입니다. 

김 차장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지낼 때부터 외교·안보 분야 자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07년 대선 과정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 공약인 ‘비핵·개방 3000’ 구상을 주도했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에 임명됐습니다. 만 41세의 젊은 나이에 외교·안보 분야 중책을 맡은 김 차장은 당시 '소년 책사'로 불렸습니다.

그랬던 김 차장은 2018년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조작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혐의는 '2012년 총선과 대선 당시 댓글 조작 관여'와 '대통령 기록물 유출' 두 가지였습니다.

1·2심 판결문에는 김 차장이 2012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으로 근무할 당시 군사이버사령부에 “좌파 성향의 인물이 백만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적은 수의 아군으로는 많은 수의 적을 이길 수 없다”며 “민간 인력 충원 시 우리 편, 아이디어가 충만한 사람, 좋은 사람을 뽑으라”고 지시했다고 적시됐습니다.

1심은 김 차장의 정치관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판단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2심은 정치 관여 혐의에 무죄를 유지했고, 대통령기록물 유출 혐의에 대한 유죄를 파기하고 벌금 300만원의 선고유예를 결정했습니다. 김 차장과 검찰은 모두 상고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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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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