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유해 발굴 재개..가족 품으로

KBS 입력 2022. 5. 2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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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25전쟁에서 전사한 우리 국군이 16만여 명입니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는 만 3천여 구에 지나지 않고, 13만여 명은 여전히 실종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전투가 치열했던 전국의 38개 지역에서 전사자들의 주검, 유해를 찾는 발굴작업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이하영 리포터, 이 유해발굴 현장에 다녀오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흔히 고지전이라고 하죠, 6.25 전쟁 때 산 하나라도 더 탈환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강원도 양구의 유해발굴 현장을 취재하고 왔습니다.

그런 현장을 보면 가슴도 좀 먹먹해지면서 나라사랑, 이런 거 좀 느끼게 될 것 같은데, 현장에 간 날 발굴된 유해가 있었습니까?

네, 전사자들의 유골, 또 당시 국군이 사용했던 다양한 유품들이 발굴됐습니다.

때마침, 이 발굴현장을 찾은 청소년들도 만났는데요.

전사자들의 희생을 보면서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 저와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펀치볼’이란 이름이 붙은 강원도 양구의 한 마을.

6.25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이곳을 취재하던 외국 종군기자가 펀치볼, 화채 그릇처럼 생겼다고 해 부르면서 유래했다는데요.

험한 산세를 자랑하는 대우산에서는 고지 탈환에 나섰던 많은 군인들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한찬희/육군 21사단 대위 : "전사기록에 의하면 아군 185명 전사 그다음에 741명 부상 그리고 20여 명 실종자가 발생했다고 기록돼있고 반대로 적군은 약 4천여 명의 사상자와 포로 55명을 포획했다고 전사기록에 기록돼있습니다."]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는 수습되지 못한 채 산골짜기 곳곳에 묻혀 있는데요.

날이 조금씩 더워지면서 겨우내 멈췄던 유해발굴 작업이 재개됐습니다.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잔해들.

["이게 아군 M1 탄두입니다."]

당시 사용했던 유품들도 세월의 흔적과 함께 모습을 드러냅니다.

[김정래/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 일병 : "일단 이렇게 통조림 같은 경우는 옛날에 시레이션이라고 전투식량 같은 거였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은 많이 나와서 제일 구별하기가 쉽고, 건전지도 함께 모으는 중입니다."]

대우산 발굴 작업은 올해로 4년째, 지금까지 2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한정희/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장 : "여기는 19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전면 발굴을 실시한 지역인데요. 19년도에는 15구 정도 유해가 나왔고 20년도에는 약 7구 그리고 작년에는 1구의 유해가 확인이 됐습니다."]

혹시라도 유해에 손상이 갈까 작업 현장에는 긴장감이 흐릅니다.

[양승찬/육군 21사단 병장 : "땅을 파다 보면 유해들이 완전 유해보단 점 유해라든지 부분 유해 그리고 유품들의 파편이 많이 나오는데 최대한 섬세하게 작업하면서 온전한 상태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군장병들이 전사자들의 유해를 조심스럽게 발굴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발굴된 유해 중 극히 일부만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발굴 작업 중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유해가 발견됐는데요.

산산이 부서진 뼛조각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오석동/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 감식관 : "두개골 및 상하악골(턱 주변) 우측 쇄골 및 견갑골 늑골 및 척추 골판 일부가 나왔고요. 우측 상완골(어깨) 그리고 우측 요골 및 척골 오른쪽에 해당하는 팔뼈 일부가 나온 상태입니다."]

지상에선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땅속에 묻힌 유해엔 적군과 아군이 따로 없습니다.

무명 전사의 뼈를 보며 발굴에 참여한 장병들의 마음도 숙연해집니다.

[김지현/육군 21사단 일병 : "저희 또래에 전쟁 나가서 참여하게 되신 분들인데 저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라서 최대한 숭고한 마음가짐을 갖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유해는 신중한 발굴 작업과 감식을 거쳐 아군인지 판정받습니다.

하지만, 인식표가 없거나 대조할 수 있는 유전자가 없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는 유해도 상당숩니다.

[한정희/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장 : "거의 대부분 유전자 대조를 통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 본인이 전사자의 가족인지 잘 모르고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약 만 3천 구의 유해를 발굴했지만 192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약 2프로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적은 수에 해당됩니다."]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유해들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중앙감식소’에 모시는데요.

산성화을 막기 위해 중성지 종이 상자에 담겨,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해발굴 현장.

땅속 깊숙이 묻혀 있는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찾은 특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남북한 출신의 학생들인데요.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 참여했다고 합니다.

[정태수/고등학교 2학년 : "당시에 얼마나 전쟁이 거셌고 위험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고요. 발굴한 유품들 보면 정말 거셌구나 전투가 힘들었구나 정말 마음이 감사하고 착잡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고요."]

발굴된 유품들에 대한 설명을 듣는 청소년들.

감식관들에게 궁금한 점도 묻습니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하신 거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어떤 것이었나요?"]

["재작년에 저희가 포항에서 경주 안강지역에서 발굴했는데(유해가) 바르게 묻혀 계시더라고요. 유품을 보다 보니 신발이 스니커즈화 같은 걸 신고 계셨어요. 그래서 전투화를 신은 게 아니죠. 근데 나중에 감식을 해보니 18세 미만이시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인식표도 없고 그래서 가족을 찾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봤던 장면을 현장에서 직접 본 학생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무서움을 깨닫게 됐는데요.

특히, 북에서 온 학생들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만들어진 것을 깨닫고 새삼,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봅니다.

[김유나/가명/고등학교 2학년/탈북민 : "북한 사람들도 여기 와서 이렇게 6.25전쟁 때 싸워서 희생되신 분들 유물이나 유해나 볼 수 있으면 그 사람들도 이렇게 아픈 전쟁이 있었구나 6.25전쟁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묻혔다는 생각을 많이 할 거 같습니다."]

2000년 4월 처음 시작돼 올해로 23년째를 맞이하는 유해발굴 사업.

2018년 9.19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이 공동으로 유해발굴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공동 발굴 작업은 진척되지 못했습니다.

하루빨리 남북 관계가 개선돼 전장에서 산화한 선혈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라봅니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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