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지방선거에도 ‘새우등’ 신세인 지방정치
이번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중심 이슈가 뭔지 모르겠다. 전국의 도로에는 후보자를 알리는 프래카드가 내걸리고, 길목마다 후보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유세소리가 가득한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번 선거에 투표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고백하건대, 대선은 후보자들의 면면을 비교적 잘 알 수 있었지만, 이번 지선은 솔직히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 지 혼란스럽다.
지난 대통령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대장동이니, 도이치모터스니 하면서 서로 상대를 향한 날카로운 공격에 나름 판단기준이 있었다. 특히 선거 막판 극적 단일화에 따라 지지후보에 숨죽이며 결과를 기다렸던 기억도 생생하다.초박빙으로 결판난 출구조사와 선거결과 역시 극적이었다. 여기에 지방에 사는 국민들은 자치분권 강화를 하겠다거나, 균형발전에 힘쓰겠다는 후보들의 약속에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 지방선거는 요란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도무지 어떤 것을 선택기준으로 삼을 지 종잡을 수가 없다. 정당과 후보자의 지지호소 목소리는 쉬어가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선거에 관심이 없다.
27일부터 시작된 사전투표에서 어떤 유권자는 도지사와 시장, 지방의원 등은 평소 평소 소신대로 투표할 수 있었지만, 교육감 투표지를 받아들고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교육감 후보 중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즉석에서 후보를 검색한 후에 투표했다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졌다.
시·도 단체장과 시·군·구 단체장, 시·도 의원과 시·군·구 의원, 시·도 의원 정당비례와 시·군·구 의원 정당비례 그리고 교육감. 정치에 관심이 있는 국민도 여간해서는 후보 면면을 꼼꼼히 살펴볼 겨를이 없을 만큼 선택해야 할 후보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치열했던 대선에 이어 바로 치러지는 선거이다 보니까 정치권의 격화된 대립 양태가 풀뿌리 정치마저 정쟁의 장(場)으로 전락되는 것 같다. 지방선거가 대통령 선거 연장전이 되어버림으로써 지방은 실종되고 중앙 정치권 뱃지들의 권력다툼의 좋은 운동장만 만들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다 보니 이번 지방선거 주민의 이익과 지역발전에 부합되는 정책이나 공약이 중심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안정이냐, 견제냐’라는 프레임을 강요함으로써 지방정치는 풀뿌리 정치의 본질은 소멸되고 중앙 정치권의 정쟁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치의 분권화는 고사하고 이번 지선을 통해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나마 강원도로서는 이번 지선을 통해 강원특별자치도가 성사될 수 있었다는 점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전히 보강되어야 할 사항이 적지 않지만, 그럼에서 강원도가 대외적으로 강원특별자치도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됨으로써 그간 소외되고 저개발에 묶여 있었던 제약을 풀고 새로운 도약의 전개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여간 이 문제는 따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강원특별자치도로 재탄생하게 되는 강원도에서 도의원에 출마해 일선에서 뛰고 있는 한 도의원 후보의 SNS를 보면, 이번 선거가 얼마나 본말이 전도된 상황에서 치러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개인의 역량이 아닌 중앙정치의 폐단에 의해 지역의 아까운 인재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능력있고 경험많은 인재는 지역을 위해서도 미래의 지도자로 육성해야 합니다”고 호소했다. 비단 자신을 지지해 달라는 것을 넘어 이번 지방선거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는 대목이다.
지방선거는 지역발전의 의제들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있는 일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통로가 돼야 한다. 이것이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은 물론, 한국 정치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는 공정과 법치, 정의라는 시대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가. 그러나 지방선거마저 자치분권의 권리를 갖지 못하고 왜곡된 선택을 강요받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방자치를 제약하는 모든 요소는 지역 스스로 주체적인 창발성을 발휘하는 것을 막고, 지방정치 리더십 발굴도 박탈하는 반민주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중앙정치권의 논란이 지방정치에 고스란히 강요되고,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끼치는 현실은 그만큼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방정치를 바라보는 한국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는 이유다. 다시한번 강조하거니와 지방정치가 또다시 중앙정치권의 여론몰이에 매몰되면,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나아가 한국정치가 발전은 공염불에 불과함을 기억하기 바란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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