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을 거듭한 '우승 청부사' 무리뉴, 대기록 수립 '영광'[최규섭의 청축탁축(淸蹴濁蹴)]

조남제 2022. 5. 28. 08: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 어제 좌절의 쓰라림 속에서 낙망하다가도 오늘 성공에 도취해 희열을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내일 다시 절망의 늪에서 낙심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곧,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기쁨과 슬픔이 갈마든다. 중국 전한 시절 회남왕 유안이 편찬한 철학서 『회남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새옹지마(塞翁之馬)가 고사성어로서 지금까지 회자하는 배경이다.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라는 우리네 속담도 있지 않던가.

새옹지마는 당연히 스포츠계에서도 통용된다. 오히려 늘 승패를 다투는 세계이기에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을 듯싶다. 영원한 강자도 영구한 패자도 없음은 스포츠계의 철칙이다. 어제 패배는 오늘 승리의 자양분이 되고, 오늘 승리는 내일 패배의 싹이다.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명문 AS 로마를 지휘하는 조세 무리뉴(조제 모리뉴) 감독(59)이 정상을 다시 밟았다. 지난 26일(한국 일자), 2021-2022시즌 첫선을 보인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 콘퍼런스리그(UECL) 초대 우승컵을 AS 로마의 품에 안겼다. ‘우승 청부사’로 불리는 그로선 실로 오래간만에 이룬 등정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도전했던 2016-2017시즌 UEFA 유로파리그(UEL)에서 패권의 뜻을 이룬 뒤 5년간 무관의 설움을 체감했던 그였다.

무리뉴 감독은 스스로를 ‘스페셜 원’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자존심이 남달랐음이 엿보인다. 숱하게 획득했던 우승컵이 뒷받침한 데서 절로 쌓인 자존심이었을 싶다. 감독 데뷔 3년 차인 2002-2003시즌 포르투를 이끌고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를 평정한 이래 유럽 축구 천하를 종횡으로 누빈 그였으니 그럼직했다. 프리메이라리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첼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토트넘 홋스퍼)→ 세리에 A(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라리가(레알 마드리드)의 세계적 클럽의 사령탑으로 활약한 그가 이처럼 오랫동안 우승과 연(緣)이 끊어졌던 적은 없었다.

오늘 유럽 클럽 대회 최다 우승 감독 영예 안은 무리뉴의 내일은?

무리뉴 감독도 역시 인간이다. 그에게 꽃길만이 존재할 리 없다. 그도 꽃길과 가시밭길이 번갈아드는 운명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삼류였다”라는 그 자신의 표현처럼, 선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더욱 생생하게 그려지는 낙담→ 환희→ 절망의 ‘순환 인생’을 밟아 왔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어쩌면 거듭되는 반전의 강도는 그에게 더욱 높게 작용했을지 모른다.

지난 5년 동안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며 분노를 삭여야 했던 무리뉴 감독은 이제 반등의 형세에 접어든 듯한 형상이다. 또 하나의 영예로운 대기록을 세웠음은 그 징표다. 유럽 클럽 대회 최다 우승자로 우뚝 섰다. 첫 마당이 펼쳐진 이번 UECL에서 패권을 거머쥠으로써 ‘우승컵 수집가’라는 별호에 걸맞은 눈부신 발자취를 남겼다.

유럽 클럽 대회는 67년의 연륜이 쌓였다. 1955년 출범한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UCL)이 시초다. 1960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1994년 UEFA 컵위너스컵으로 개칭)과 1971년 UEFA컵(현 UEL)이 봇물 터지듯 잇달아 창설됐다.

이같이 강산이 거의 일곱 번 바뀔 만큼 깊이 뿌리내린 유럽 클럽 대회에서, 무리뉴 감독은 으뜸의 자리에 올라섰다. 2000년 프리메이라리가의 벤피카에서 첫 지휘봉을 잡은 이래 22년 동안 모두 5회 정상을 밟았다. UCL(포르투 2003-2004시즌,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9-2010시즌)과 UEL(포르투 2002-2003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6-2017시즌)에서 각각 2회, UECL에서 1회 우승이 그 결실의 열매다(표 참조).

무리뉴 감독은 현존하는 3대 유럽 클럽 대회를 모조리 석권한 첫 사령탑의 영예도 아울러 차지했다. UEFA 컵위너스컵(UCWC)이 1999년 UEL로 통합됐기 때문에, 그는 애초에 도전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가 이 빛나는 기록을 4개 팀 사령탑으로서 남긴 데에서도 우승 청부사의 진면목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무리뉴 감독의 이 같은 대기록은 당연한 과실이다. 자신이 밟았던 유럽 4대 리그를 모두 휩쓸며 받은 탄력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EPL 3회(첼시)를 비롯해 라리가 1회(레알 마드리드), 세리에 A 2회(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프리메이라리가 2회(포르투) 등 각국 리그에서 8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으며 유럽 축구 천하를 평정했다.

이 부문에서, 종전까지 영광을 구가했던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은 아깝게 2위로 내려앉았다. 우승 횟수에서는 같았으나, 최고 무대인 UCL 챔피언 타이틀이 1회(유벤투스 1984-1985시즌)에 그친 점이 발목을 잡았다.

오늘은 내일의 어제다. 반전과 반전이 거듭되는 인간사에서, 오늘의 앙등은 내일의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전을 이뤄 내림세에서 오름세로 전환된 오늘을 맞은 무리뉴 감독이 내일 어떤 양상을 빚을지 지켜볼 만한 까닭이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