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 '우리가 문학을 사랑하는 이유'..압둘라자크 구르나가 답하다

김태형 2022. 5. 2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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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나옵니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퀸의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일과 삶을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입니다. 한국에서만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천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극장을 찾았습니다.

영화 앞부분에는 프레디 머큐리의 어머니가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집안 내력에 대해 아는지, 슬쩍 물어보는 장면이 들어 있습니다. 아들의 출생지를 아느냐고 질문을 했던 것인데, 여기에 잔지바르라는 지명이 등장합니다.

"(아들이) 잔지바르 태생이라고 얘기 안 했나요?"

프레디 머큐리의 여자친구는 처음 듣는다고 답합니다. 이 모습을 본 밴드 동료가 '런던 태생이 아니었느냐'고 묻습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동생은 '런던에서 열여덟 살에 태어났다'고 답을 해줍니다. 프레디 머큐리가 열여덟 살 때부터 런던에서 살게 됐다는 의미였습니다.

고향 땅이 화제에 오르자, 프레디 머큐리의 아버지는 잔지바르를 떠난 이유에 대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떠난 게 아니었어요. 옷가지만 들고 쫓겨났던 겁니다."

프레디 머큐리 가족이 잔지바르를 떠난 데는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동아프리카에 있어 상대적으로 유럽도 가깝고, 아라비아 반도도 가깝고, 인도도 가까운 이 지역은 고대로부터 중계무역이 번성했는데요.

탄자니아 잔지바르 (구글 지도)


근대로 넘어오면서 포르투갈과 영국 등이 이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제국주의의 광풍에 희생되며 고통과 시련의 시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1963년 12월이 되어서야 영국의 보호령이 끝이 납니다. 하지만 곧이어 1964년 '잔지바르 혁명'이 일어나면서 아랍과 인도계 주민들은 탄압 대상이 됩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어렸을 때 인도로 유학을 갔지만,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던 인도 출신 가족들도 혁명 이후 결국 잔지바르를 떠나 영국에 이민을 가게 됩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살던 땅을 떠나야만 했던 프레디 머큐리 가족의 사연을 가족과 친구, 동료들의 짧은 대화를 통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줬던 것이죠. 현재 탄자니아 땅인 잔지바르에는 프레디 머큐리 박물관을 비롯해 그를 기리는 관광 명소들이 있기도 합니다.

프레디 머큐리 박물관 (탄자니아 잔지바르, 구글 스트리트뷰)


이처럼 프레드 머큐리는 잔지바르를 대표하는 유명 인사로 통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는 잔지바르 출신 세계적 인물이 한 명 더 늘었습니다.

이야기는 1964년 잔지바르 혁명이 일어나고 4년 뒤인 1968년에 시작됩니다. 당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출신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탄압받던 잔지바르에서 무슬림 청년 한 명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라는 젊은이였습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낯선 영국 땅에서 공부를 계속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영국 켄트 대학교 교수가 됩니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탈식민문학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글을 씁니다. 1987년 첫 장편소설을 냅니다. 1994년에는 장편소설 '낙원'으로 부커상 후보에도 오릅니다. 2001년에는 '바닷가에서'를 내고 다시 부커상 후보로 선정됩니다.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상을 받았던 2016년에는 부커상 (영어권 문학 부문) 심사위원에 위촉되기도 했습니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도 꼽히는 부커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르고도 아쉽게도 수상을 하지 못했던 그는 지난해 10월 아마도 가장 유명한 문학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또 다른 상을 타게 됩니다. 노벨문학상입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해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그를 프레디 머큐리 이후 가장 유명한 잔지바르 출신 인물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당시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가 유명하죠. 하지만 잔지바르에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사실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제 친척 가운데 한 명도 잔지바르에서 ‘머큐리’라는 이름의 멋진 술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잔지바르 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프레디 머큐리 아세요?’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고 할 겁니다. (웃음) 물론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를 겁니다."

가디언이 프레디 머큐리 이후 가장 유명한 잔지바르 출신 유명인사라고 표현을 한데서 엿볼 수 있듯이, 그의 문학을 이해하려면 잔지바르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는 게 좋습니다. 그의 소설 낙원이나 바닷가에서가 동아프리카가 배경이거나 동아프리카의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한국어판 작품 (낙원 / 바닷가에서 / 그후의 삶)


소설 '낙원'을 보겠습니다. 이 소설은 1차 세계대전 직전의 동아프리카가 배경입니다.

아버지가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열두 살 소년 유수프가 부유한 상인에게 볼모로 잡혀갑니다. 소년은 상인의 집에서 이런저런 일을 합니다. 쉽게 말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죠. 아버지가 빚을 갚을 수 있을지, 집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지, 소년은 알지 못합니다. 버림받은 기분도 들지만, 소년은 울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소설 낙원은 술술 읽히는 편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빠른 박자를 생각하고 책을 고른 분이라면 소설 속 시간이 더디 가는 기분이 들지도 모릅니다. 따져보면 주인공 소년의 삶 자체가 그러합니다. 별다른 변화가 없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빚을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남의 집에 팔려온 소년, 특별한 희망도 없고,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미래가 잘 그려지지도 않는 소년, 10대 소년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소년은 어느 날 물건을 팔기 위해 머나먼 내륙으로 떠나는 카라반 여행에 동행하게 됩니다. 지금으로 치면 종합상사가 수행하는 일종의 무역 업무 같은 일이었지만 여행은 쉽지 않았습니다. 산길, 들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은 물론, 폭풍, 폭우와 맞서야 했고, 먼지와 모래 구름을 뚫고 가야 했으며, 야생동물이나 벌레들을 쫓아내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일종의 통행료를 받아내려 하는 원주민들과는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여야 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적대적 분위기 속에서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실제로 목숨을 잃는 짐꾼, 일꾼들이 한 명, 두 명 생겨납니다. 그래도 여행은 계속됩니다. 극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숨어 있던 인간의 본성도 드러납니다. 낯선 땅에 끌려와 더 낯선 땅으로 가게 된, 그것도 나의 여행이 아닌 남의 여행에 동참하게 된 소년 유수프는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낙원은 어디에 있는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 (화상 기자간담회, 2022.5.18)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지난 18일, 한국 기자들과 화상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의 쓸모란 무엇일까,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먼저, 즐거움(pleasure)을 얻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어떤 정보를 얻거나 소식을 얻기 위해서라면 신문이나 논문, 전문서적들을 읽으면 된다면서, 소설이나 문학작품을 만나는 첫 번째 이유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우리가 '자, 이제 난 앉아서 독서를 즐길 겁니다.' 이렇게 드러내 놓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즐거움이 있기에 우리가 문학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동시에 우리는 문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알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게 되고, 그들이 어떤 환경에 있는지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그런 경험,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그런 경험이야말로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와 같은 경험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인간(human being)임을 더욱더 자각하게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진실 된 글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습니다. 그는 '우리 삶이 어떠한지 진실된 글을 쓰고자 한다면 잔혹함이나 불공정에 관해서 얘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면, 예를 들어 따스함이나 사랑, 친절함 같은 일들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한국 독자들을 위해 책 읽는 순서에 대한 가벼운 조언도 곁들였습니다. 한국에 번역된 세 권의 책을 다 읽는다면 출간된 순으로, 시간이 없다면 최신작부터 읽을 것을 추천했습니다.


동아프리카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낙원'이 1994년에 나왔고, 아프리카를 떠난 난민의 이야기를 풀어낸 '바닷가에서는' 2001년에 출간됐으며, 과거 독일의 지배를 받던 동아프리카 민초의 삶을 그려낸 '그후의 삶'은 2020년에 선보였기 때문에, 한국어 번역본을 책이 발간된 순서에 맞춰 읽는다면 낙원, 바닷가에서, 그후의 삶 순으로 책을 펼쳐 들면 됩니다.

어느 소설을 먼저 읽건 모두 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 될 텐데요. 퀸의 프레디 머큐리에 이어 잔지바르를 대표하는 또 다른 유명 인사가 된 압둘라자크 구르나, 그의 소설책 세 권이 지금 서점에 나와 있습니다.

김태형 기자 (in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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