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에 비친 한국] 실학에서 배우는 자주적 대외관
명나라 사상에 취했던 18세기 조선
박제가·박지원·정약용 등 실학자들
우리만의 가치·주체성 세울 것 강조
21세기 한미관계도 실사구시 필요
최근 한국인들은 한때 익숙했던 미국의 정치 및 학술 기관들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파악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버드 교수들이 질병에 대한 비이성적인 논쟁에 나서는 것과 함께 미국 워싱턴 DC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과학과 맞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함으로써 가장 저속한 수준으로 떨어진 미국의 기준을 본 한국인들이 실망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대부분의 한국 오피니언 리더들은 그들이 1980년, 1990년대에 미국의 최고 대학에서 공부할 때 본 미국의 지식인 커뮤니티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그 미국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부 대학교는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연구를 하기 힘든 환경으로 변했다.
물론 한국의 지식인들은 과거 미국의 지도 교수와 지금도 대화를 나누고 있으나 혼란에 빠진 미국에서는 그 지도 교수들이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결국 한국 지식인들은 미국의 교육과 행정, 그리고 정치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서 매우 흡사하고 반복적인 역사적 사고방식의 흔적을 볼 수 있다.
16세기 후반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군대를 파견한 명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는 미국이 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한국전쟁 당시 피로 동맹 관계를 맺은 상황과 비슷하다.
명나라의 대명률과 외교 관습, 철학 사상, 교육 및 문화적 규범은 한국에서 의심할 여지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지식인들은 왜 명나라가 17세기 전반에 정치적 내분, 퇴폐, 재정적 파산으로 급속히 붕괴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개혁과 외국의 혁신 수용 모두를 무력화시키는 명나라에 대한 애수와 향수가 국가 전체를 장악하고 있을 당시 18세기 한국의 지식인 몇 명이 새로운 철학적 전망을 제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실학(實學)이다. 박제가·박지원·정약용 등 용감한 학자들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지적 주체성을 세울 것을 권하고 한국이 동시대 외국 문화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할 능력을 키울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학자들은 또한 청나라가 만주에 의해 통치되고 있으며 더 이상 명나라의 맥을 따르지 않더라도 혹 한국에 적합한 청나라의 기술, 정책 또는 제도가 있다면 당연히 채택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즉 그들은 이미 몰락한 명나라에 대한 향수로 조선이 신기술과 지리정치학적 현실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청나라로부터 해롭거나 부적절한 영향을 받는 정책, 기술 및 제도를 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이 학자들은 일본과 서방국가에 대해서도 같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정신은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다. 현재의 미국의 문화·기술·정책 등이 한국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의 혁신이 있다. 하지만 미국을 영원히 최고로 보는 것은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일이다.
미국은 이미 빛을 많이 잃었고 지배구조와 문화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필자는 지난해까지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일한 사람으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들이 현실을 스스로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국민이라면 미국 사회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가차 없이 거부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일본·독일·중국도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는 모두 여러 모델과 기술을 한국에 공유·제공할 수 있지만 분명 한국에 부적절하거나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놓을 수도 있는 시기가 왔으며 더 나아가 한국은 어떠한 전략적 위치에서 스스로 격상, 유지할 것이냐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상대국의 신호나 허락만 기다리는 퇴보적이고 의존적 사고방식은 과감히 버려야 할 때다.
한국인들이 실학의 진정한 의미를 재발견할 때가 왔다. 과학적 원칙에 따라 한국인들은 외국 모델의 적합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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