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星의 한 별'이던 LCD 사업..글로벌 삼성 초석되고 30년 역사 종지부

박진우 기자 입력 2022. 5. 28. 06:01 수정 2022. 5. 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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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이건희 회장 지시로 'LCD연구개발팀' 출범
1995년 12.1인치 패널 도시바에 공급하면서 승승장구
2004년 日 소니와 디스플레이 합작회사 만들기도
중국 저가 공세로 경쟁력 떨어지자 삼성디스플레이 분사
향후 OLED에 주력하기로
LCD를 생산하던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전경.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삼성에 있어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은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름 잡을 수 있게 해준 핵심 사업이었다. 반도체, 휴대전화와 함께 삼성(三星)의 세 별로 불린 LCD 사업은 ‘글로벌 삼성’의 초석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LCD 사업이 오는 6월 초 모두 종료된다. 삼성 LCD 30여년 역사에 종지부가 찍힌 셈이다.

삼성의 디스플레이 사업을 총괄하는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사업 종류 이후, 회사의 캐시카우(주 수입원)인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퀀텀닷(QD)-OLED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관련 투자 역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전 회장

삼성전자는 1991년부터 LCD 사업에 주목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문에는 ‘LCD연구개발팀’이 조직됐는데, 이 조직이 삼성 LCD 사업의 시초가 된다. 이 회장은 아직 시장이 열리기 전인 박막트랜지스터(TFT)-LCD에 주목했다. 1993년에는 삼성SDI의 전신인 삼성전관에 있던 LCD조직을 삼성전자로 옮겨 역량을 높였다.

1993년 12월 삼성전자는 9.4인치 시제품을 제작했다. 자신감이 높아진 이 회장은 1994년부터 2000년까지 TFT-LCD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LCD 사업에 더욱 속도를 냈고, 3500억원을 투자해 1995년 2월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LCD 1공장을 준공했다. 지금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는 LCD 생산 라인이 존재하고 있진 않지만, 삼성디스플레이의 본사 역할을 하는 빨간 벽돌 건물이 남아 있다.

같은 해 삼성전자는 10.4인치 패널을 월 4만장 생산할 수 있도록 시설을 늘렸다. 매출 1억달러를 처음으로 넘어선 것도 그때쯤이다. 그럼에도 당시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장악하던 일본 업체를 제치는 건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회장은 LCD 표준이라던 11.4인치가 아닌 12.1인치에 승부를 걸었다.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어디서도 삼성이 만든 12.1인치 LCD를 사용하겠다는 제조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노트북 업체 도시바가 삼성 측에 “큰 화면으로 노트북을 만들고 싶다”는 의향을 전달했고, 삼성 12.1인치 LCD 패널은 이듬해부터 소위 ‘대박’을 쳤다.

1996년 LCD 주문이 쏟아졌다고 한다. 1996년 4월 6일 이 회장은 ‘21세기를 위한 사장단 전략 세미나’를 직접 열었는데, 앞서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3년 만에 사장단이 모인 전략 세미나로 기록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매년 2억5000만달러 이상을 투자해 세계 최대 LCD 업체가 되겠다”고 했다.

1997년 디스플레이 시장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일본 업체들이 삼성을 견제하기 위해 ‘저가 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보니 패널 수익성은 크게 약화했다. 다만 수량 조절을 위해 생산 시설을 늘리지 않은 일본 업체와 반대로 삼성전자는 1997년 9대 신수종 사업에 LCD를 넣고, 8000억원을 들여 충남 천안시에 3공장을 세우기로 한다. 기흥 1, 2공장과 함께 천안 3공장으로 삼성전자는 12.1인치 패널 월 9만대, 13.3인치 패널 월 18만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1998년 LCD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수요는 공급을 뛰어 넘었고, 미리 생산능력을 확보한 삼성전자의 LCD 사업은 탄탄대로를 걷는다. 결국 10인치 이상 대형 LCD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듬해에도 18.8%라는 점유율로 업계 1위 자리를 지켰다. 1999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700만화소를 구현하는 24인치 LCD TV를 내놓기도 했다.

2000년대 삼성전자는 벽걸이 TV용 LCD 패널을 대중화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화질 뿐 아니라 두께에서도 앞선 기술력을 선보인 것이다. 2004년 일본 소니가 삼성전자에 합작 회사인 S-LCD를 제안한 건 디스플레이사(史)에 있어 일대 사건으로 기억된다.

S-LCD는 자본금 2조1000억원으로 시작했다. 지분구조는 삼성전자가 50%+1주, 소니가 50%-1주로 결정됐다. 장원기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이 S-LCD의 초대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최고재무책임자는 소니의 나카자와 게이지가 맡았다. S-LCD는 가장 성공적인 합작 회사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큰 고객사 하나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소니는 안정적인 패널 공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이윤우 당시 삼성전자 사장은 “소니 LCD TV에 사용할 TFT-LCD를 전량 공급함에 따라 TV용 TFT-LCD 시장에서 40% 이상의 시장점유율 달성이 가능할 것이다”라고 했다.

당시 삼성전자 상무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S-LCD의 등기이사로 활동했다. 경영에도 적극 참여했다고 한다. JY디스플레이라고 불리는 QD디스플레이에 수년간 13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선언은, 이 당시 경험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삼성은 LCD 첨단 제품 출시를 이어갔다. 2007년 두께 10㎜의 40인치 LCD 패널을 세계 최초로, 그 다음해에는 이 두께를 7.9㎜까지 줄였다. 노트북에 폭넓게 채택됐던 12.1인치 초슬림 패널도 삼성전자 LCD사업부의 작품이었다. 삼성전자는 TV용 LCD 패널 점유율도 확대해 갔는데, 2005년 점유율 20%로 일본 샤프(18%)를 밀어내고 세계 2위에 올랐다. 2008년에는 LG디스플레이를 꺾고 세계 1위 자리를 꿰찼다.

2010년대 들어 LCD 사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중국 업체들이 디스플레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낮은 가격으로 공세를 펼친 것이다. 중국 업체들이 대규모 LCD 공장을 돌리자, 시장에는 공급이 넘쳐났고, LCD 수익성은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LCD 사업부가 1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BOE가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로 부상했다. 만년 적자 기업이던 BOE는 한국계 기업 하이디스를 인수한 후 경쟁력을 확보했다. 1990년 삼성 전략을 그대로 갖다 쓴 BOE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업고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보다 제품을 싸게 팔았다. BOE는 2010년 1.7%에 불과하던 9인치 이상 LCD 패널 점유율을 2012년 5.5%로 확대하고, 2015년 12.1%로 키웠다. 이어 2017년 21.5%를 기록하면서 삼성과 LG를 제쳤다.

삼성전자는 디스플레이 사업 강화를 위해 2012년 삼성전자 LCD사업부를 삼성디스플레이로 분사했다. 그럼에도 LCD 사업은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평균 패널 가격이 떨어지면서 수익성 악화가 심각해진 탓이다.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가 나는 시장 상황에 버티지 못한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사업 철수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데드라인을 2020년 말로 잡았다. 중국 쑤저우 LCD 공장은 중국 가전업체 TCL의 디스플레이 자회사 CSOT에 매각하고, 아산사업장 생산 라인의 가동을 중단했다.

QD-OLED.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삼성은 물론 LG까지 LCD 사업 종료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업체들은 가격 정책에 변화를 줬다. 공급가를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시장 상황이 마련된 덕분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펜트업(억눌린 수요가 폭발하는) 현상이 겹치면서 LCD 수요가 급격하게 늘었다. 중국 업체 주도로 패널 공급가격이 상승하자, 협상 우위에 서고 싶었던 삼성전자는 삼성디스플레이에 TV용 LCD 생산을 유지해달라고 요청한다. 패널가 계속 올리면 삼성디스플레이 공급 비중을 높이겠다는 식으로 중국 업체와 협상을 벌인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철수 계획을 접고 2022년까지 LCD 생산을 유지하기로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요가 고점을 찍고 하락 추세에 접어들었다. 패널 가격 역시 떨어졌다.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출구 전략을 다시 세운다. 마침 삼성전자가 저가 LCD를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 업체로부터 들여오기로 하면서 삼성디스플레이가 LCD 사업을 유지할 명분은 약해지게 됐다. 결국 삼성디스플레이 마지막 LCD를 만들 원재료를 공장에 반입하고, 30여년의 LCD 역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20년 기준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형 OLED와 이 부회장이 직접 대규모 투자를 발표해 JY디스플레이로 불리는 QD디스플레이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에서 QD디스플레이에 걸고 있는 기대는 대단히 크다. 최권영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은 지난달 올해 1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프리미엄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소형 리지드, 플렉시블 OLED 제품군에 대형 QD 디스플레이까지 더해져 삼성디스플레이는 디스플레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곳에 완벽한 자발광 디스플레이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라며 “경쟁사가 따라오기 어려운 역량을 통해 지속적으로 고도화되는 소비자 눈높이와 다양화되고 있는 시장 수요를 모두 만족할 수 있는 OLED 신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중장기 성장동력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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