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탄소중립 노력은 곡물 재배에서 시작된다
농업은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의 주요 배출원 중 하나다. 농사에 쓰이는 트랙터나 비료의 주요 성분인 질소가 탄소를 만들어 낸다. 논이나 습지에서 산소가 적어지고 토양이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혐기적 조건이 될 때 혐기성 세균인 메탄생성균이 대표적 온실가스인 메탄도 만든다.
미국은 농업을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유망한 분야로 보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19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농지는 연간 최대 8.6기가톤(Gt)의 탄소를 포집해 저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이는 한 해 동안 미국 전체 탄소 배출량의 약 1.3배에 해당한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근 소도시 메이즌에 위치한 ‘폴앤도나 제슈케’ 농장에서는 옥수수 파종이 한창이었다. 매년 5월 초 옥수수 파종을 시작하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낮은 온도와 습한 날씨로 파종이 늦어졌다. 1975년부터 옥수수와 대두 등 곡물 농사를 지어왔다는 농장주 폴 제슈케 씨는 최근의 기후변화에 대해 “농부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숙명”이라며 “최근 농업에 요구되는 탄소중립 역시 농부가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환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 순배출량이 ‘제로(0)’가 되는 것을 뜻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인류 공동의 전략이다. 모든 산업군에서 탄소중립 전략 실천이 요구된다. 특히 농업은 인류의 식량 문제와 연결된 주요 전략 분야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외면했던 기후공약을 다시금 되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탄소농업 도입을 독려하고 있다. 탄소농법을 채택한 농부에게 크레딧을 제공하는 ‘탄소은행’을 운영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2019년 “토양이 탄소 포집의 다음 전선”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폴앤도나 제슈케 농장은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적극 실천하고 있다. 제슈케 씨 부부를 포함해 총 3개 가족이 4800에이커(약 19km²)를 관리한다. 여의도의 약 6.4배에 달하는 면적의 약 10%에 지난해부터 ‘커버크랍 농법’을 적용했다. 커버크랍 농법은 수확 목적의 작물을 기르는 것이 아닌 토양을 덮기 위해 식물을 심는 것을 말한다. 이 식물들은 땅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땅을 그늘지게 해 지표면의 열기를 낮추고 빗물을 흡수해 땅 속에 수분을 저장한다. 토양 침식을 줄여 땅 속 유기물과 탄소가 공기 중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막는다. 제슈케 씨는 “귀리나 유채, 호밀 등의 작물을 피복작물로 기른다”며 “지난해부터 실험적으로 이 농법을 농지에 적용 중”이라고 말했다.
농장이 1982년부터 적용해온 ‘무경운(no-till) 농법’도 탄소절감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무경운 농법은 농작물을 기른 뒤 땅을 갈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금 파종을 하는 농법이다. 제슈케 농장은 대두와 옥수수를 번갈아 재배한다. 땅을 뒤집지 않기 때문에 땅 속에 저장된 탄소가 대기 중으로 튀어나올 일이 없다. 또 땅을 뒤집기 위한 트랙터 사용이 줄어 탄소 배출도 줄어든다.
이와 관련 지난 2020년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탄소 배출량이 5~7% 감소했음에도 대기 중 탄소 농도는 연일 역대 최다를 기록 중이다. 토양의 탄소 방출량 증가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제슈케 씨는 “옥수수와 대두를 번갈아 심어 병해충 관리에 유리하기 위해 적용한 농법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탄소절감 효과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슈케 씨는 무엇보다도 탄소중립 실천을 위해 곡물 산출의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요한 생산량은 일정하기 때문에 최적의 자동화를 통해 곡물 생산량의 효율만 높인다면 결국 탄소 배출을 줄이게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가령 제슈케 씨 농장은 밤에도 운영된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달린 모종 기계가 밤에도 알아서 모종을 한다. 제슈케 씨는 “적극적으로 수확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모종 기계에는 토양 수분이나 품종 데이터, 자율주행, 수확량 지도 표시 등의 기능이 모두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일리노이 주는 제슈케 씨의 농장처럼 탄소중립 농법이 가장 잘 적용된 주다. 미국 내 옥수수 생산량은 아이오와 주가 가장 많고, 두번째가 일리노이 주이지만 재배면적 대비 곡물 생산량은 1위다. 토양에 탄소를 저장하면 곡물 생산성도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은 토양의 탄소가 1ha당 1t이 늘면 밀 수확량이 20~40kg 증가할 것이란 분석을 지난해 내놨다.
제슈케 씨는 탄소농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후세대를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대승적 의미의 후세대를 위한 노력이 아닌 본인의 손자에게 농장을 물려줘야 한다는 의미다. 손자가 농사를 지을 때 농사를 이어가기에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슈케 씨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곡물 수확량을 체크하는 모니터 외에 5명의 손자 사진이 담긴 액자가 놓여 있었다. 아내인 도나 제슈케 씨는 “손자들이 농업을 이어갈 것”이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슈케 씨 부부도 조상의 농업을 이어왔다. 도나 제슈키 씨의 조상은 1845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온 농업 이민자이며 폴 제슈케 씨 조상 역시 1930년대 초 이주해온 농업 이민자다. 6세대에 걸쳐 농사를 지어온 집안으로 후세대에도 가업을 이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농부 개인의 이런 가치관을 지원하는 정책과 산업도 존재한다. 실질적으로 탄소농법을 도입한 농가에게 금액을 지원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지난해부터 ‘흙 살리기 운동’을 시행해 트랙터 운행을 줄이고 커버크랍 농법을 적용한 농가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농부들이 포집한 탄소를 t당 15~20달러 사이에 금액으로 매입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들 기업은 매입한 탄소를 탄소배출권이 필요한 기업에 판매한다.
탄소농법으로 길러진 곡물은 또 다른 탄소중립 실현책으로 쓰인다. 가령 탄소 저감을 목적으로 휘발유에 섞어 사용하는 바이오에탄올이다. 바이오에탄올은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 식물체를 수확해 세포벽을 이루는 셀룰로스를 당으로 분해한 뒤 효모로 발효시켜 만든 것으로 화석연료보다 대기오염 물질이 적어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산소 함량이 적어 불완전 연소에 따른 일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휘발유와 달리 바이오에탄올은 산소를 포함하고 있어 불완전연소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제슈케 씨는 “미국의 탄소중립 노력은 농업에서부터 시작한다”며 “건강한 토양과 환경을 후세대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제슈케 씨는 “최근의 국제정세 불안, 유가상승, 인플레이션 현상 등으로 농사 부자재들의 가격 상승에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옥수수 수확 후 건조에 쓰이는 LPG 가스의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올해 약 2.3배, 질소 가격은 약 4.8배, 제초제 가격은 약 3.8배 오르는 등 가격 상승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제슈케 씨는 “한국의 농부들의 상황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고통은 만국 공통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함께 친환경적인 농법을 추진해야 한다”며 “커버크랍 농법이나 무경운 농법은 구체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카고=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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