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데이터가 보여주는 식량 위기의 이유
밥상 물가가 심상치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 세계의 무역망을 뒤흔들었고,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식량 위기가 찾아왔다. 단순히 밥상 물가가 뛰어오르는 것을 넘어, 없어서 못 먹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식량 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세계 각국과 기관에서 종합한 데이터와 통계로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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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한창이던 지난해, 뜻밖의 대란이 펼쳐졌다. 맥도날드와 롯데리아, 교촌치킨 등에서 감자 수급의 한계로 제공하던 메뉴를 더 이상 팔 수 없게 된 것이다. 곧이어 터진 양상추 대란까지. 코로나19 때문에 국가 간 물자 이동이 줄었고 수요예측에 실패한 탓이었다. 감자와 양상추 대란은 이내 곧 물량이 확보되며 한때의 일로 끝났지만, 우리가 현재 마주한 식량 위기의 단면을 보여주는 복선이었다.
그리고 지난 2월 ‘유럽의 빵공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유럽 최대 밀 생산국인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휩싸이며 다시 한번 식량 위기가 닥쳤다. 식량 물가는 십수 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농업 생산국은 식량 안보를 지키기 위해 수출을 걸어 잠그고 있다. 더불어 기후변화는 현재까지 꾸준히 농업 생산량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 기후변화
미국 메릴랜드대가 운영하는 비영리 농업 관측 기구인 ‘지오글램(GEOGLAM)’은 우주와 항공 플랫폼에서 얻은 지구관측(EO) 데이터를 이용해 전 세계 농업 작황을 제공하고 있다. 정규 식생 지수(NDVI)와 증발산량, 강수량, 기온, 토양 수분 및 지표수 등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이용해 작황 분석의 정확도를 높인다.
지난 4월 7일 지오글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옥수수와 쌀의 작황 전망은 양호하다. 반면 밀과 콩은 주요 생산국에서 기후변화와 전쟁 등의 이유로 작황의 불확실성이 높다. 밀과 콩의 작황 예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가뭄이다. 밀 주요 생산지인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 지난해부터 역대 최대의 가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27개 국가 종합)에 이어 밀 생산량 2위를 차지하는 중국도 작황의 악화가 예상된다. 이유는 홍수다. 2020년에 이어 지난해 7월 중국 허난성에는 3일 동안 연평군 강수량(640.8㎜)에 근접하는 617㎜의 비가 내렸다. 당시 농지 21만 5000㏊(헥타르1ha는 1만㎡)가 침수되며 밀 파종이 늦어졌다.
콩의 경우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의 가뭄이 가장 큰 우려 요소다. 지난해 브라질 곡창지대인 중서부와 남부, 남동부에서 90여 년 만에 최대 규모의 가뭄이 발생하면서 곡물의 작황이 악화됐다. 당시 브라질 국립통계원(IBGE)은 작물 생산량이 1~2%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렇듯 기후변화는 곡물 생산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에 많은 연구자들은 기후와 곡물 생산량의 관계를 밝혀 전 세계에서 작황을 파악하는 도구를 개발하고, 개선하고 있다. 강신규 강원대 에코환경과학전공 교수는 “기후 데이터를 통해서 작물의 생산량을 예측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다”며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통계 모형을 비롯해 관측자료와 식물의 생리학적 요소를 결합하는 생물리 모형 등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이유 전쟁
데이터는 전쟁도 식량위기를 일으키는 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3월 14일 기준 우크라이나 일대의 NDVI는 대부분 작황에 부정적인 수치를 보였다. 2년 전인 2020년 3월 13일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대부분 긍정적인 수치를 보였지만 달라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건 기후조건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당기간 우크라이나 일대에서의 강수량과 토양 수분, 증발산량 등 기후조건 데이터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기후조건 이외에 고려할 수 있는 변수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돼 2월 본격화된 러시아와의 전쟁이다.
데이터를 보면 식량 위기가 지속될 것인지도 점쳐볼 수 있다. 4월의 우크라이나 농작물 데이터는 현재 자라고 있는 겨울밀의 생장률을 의미한다. NDVI를 고려하면 4월 우크라이나 겨울밀의 생장률은 2년 전과 비교해 한참 떨어졌다. 겨울밀은 가을 또는 겨울에 파종해 이듬해 여름에 수확한다. 생장률이 좋았다면 겨울밀 수확이 마치 단비처럼 느껴졌을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다. 현재의 밀 대란이 수개월 이상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4~5월에 심는 봄 밀과 옥수수의 상황도 좋지 않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올해 봄, 곡물 파종은 700만㏊에 그칠 전망이다. 예정된 1500만㏊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로만 레슈첸코 우크라이나 농업부 장관은 “특히 옥수수 파종 면적이 많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시작한 이후 곡창지대가 폭격 피해를 입은 탓이다.
세 번째 이유 코로나19
미국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곡물을 생산하고 있는 중국에선 코로나19의 재확산 때문에 작물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100명 이하였던 일일 확진자 수가 3월 이후 1000명을 넘어섰고 4월 11일 기준 2만 5000명을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고강도 봉쇄정책이다. 5월 시작되는 옥수수 파종을 앞두고 중국 내 옥수수 생산량의 10%를 차지하는 지린성이 봉쇄돼 파종이 늦춰지는 상황이다. 홍수 때문에 지난해 밀 파종이 늦어져 중국의 밀 작황이 좋지 않은데, 옥수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즈에 따르면 야오 마오솅 중국 베이징대 환경과학기술대 교수는 “5월 말까지 총 확진자 수가 12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예상대로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된다면 봉쇄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 확진자를 0명으로 통제하겠다는 ‘제로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관영매체를 이용해 제로코로나의 필요성을 선전하고 있다.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 추세에 따라 옥수수 작황이 계속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외에도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식량 위기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해볼 수 있다. 자동선박식별시스템(AIS)을 이용해 전 세계 물동량을 파악할 수도 있고 농작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비료의 생산량, 에너지 가격 등 다양한 데이터 모두 작물 생산과 연관된다.
밀가루, 지난해보다 20~30% 올라
이렇듯 여러 요인으로 식량 물가가 폭등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식탁 물가는 어떻게 변했을까. 4월 8일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발표한 3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59.3, 지난달보다 12.6% 증가했다. 이 수치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특히 곡물가격지수는 지난달에 비해 17%가량 상승해 170.1을 기록했다.
덩달아 국내 밥상 물가도 껑충 뛰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제공하는 ‘주요농축산물소비자가격동향’에 따르면 4월 11일 기준 28개 항목에서 무와 양파, 건고추, 당근만이 평년 대비 낮은 물가를 형성했고, 나머지 24개 항목에서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최대 50% 이상 물가가 올랐다. 특히 28개 항목 중 곡물류에 속하는 쌀과 감자, 콩의 경우 모두 물가가 올랐다. 감자는 평년 대비 17~20%, 콩은 13~23% 물가가 오른 상태로 거래되고 있다. 쌀은 약 3% 상승해 평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국내 자급률이 100%에 웃돌고, 작황이 좋은 덕분이다.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지 않는 밀은 제품의 형태로 소비자 물가를 가늠할 수 있다. 밀가루는 지난해보다 평균 20~30% 물가가 올랐다.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 물가가 모두 20% 전후로 오른 셈이다.
현재 전 세계 곡물 물가는 2012년 애그플레이션(농작물 가격이 오르며 물가가 전반적으로 함께 오르는 현상) 당시와 유사한 수준이다. 전 세계 곡물 물가는 국제시장의 선물 가격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애그플레이션이 가장 심했던 2012년 8월과 지난 4월을 기준으로 옥수수와 콩의 선물 지수는 유사한 수준이다. 밀의 경우에만 현재 선물 지수가 약 20% 높다. 반면 국내 소비자 물가는 2012년 8월 대비 대부분의 곡물에서 10~20% 비싸다. 이에 대해 김종진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시와 현재의 곡물 수입가는 비슷해도 곡물 물가 이외에 유류비, 인건비 등 당시보다 유통비용이 크게 늘어 일어난 현상”이라며 “국내에 유통되는 곡물 물가는 국제 곡물 물가 이외에 다양한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더 오를까?
김 연구위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향방이 곡물 물가를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전쟁이 일찍 마무리된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3~5월 봄밀과 옥수수를 심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럼 수확철에 들어서 식량 위기가 진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두 나라의 영향으로 식량 위기가 해소될지 따져볼 땐 생산량이 아니라 수출량을 봐야 한다. 생산량만 살펴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 밀 생산량 중 우크라이나가 약 3.7%, 러시아는 약 9.7%를 차지한다. 옥수수는 우크라이나에서 약 5%, 러시아에서 1.2%를 생산한다. 단순히 생산량만을 봤을 때 두 국가의 작황이 전 세계 곡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생산량의 대부분이 수출된다는 점이 두 국가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밀의 경우 러시아가 수출량 1위, 우크라이나는 4위로 추정된다. 한편 중국의 경우, 전 세계 밀과 감자, 콩, 쌀 생산량 1위, 옥수수 생산량 2위에 오를 정도로 많은 양의 곡물을 생산하지만 대부분의 곡물이 자국에서 소비된다. 김 연구위원은 “물가 상승과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단지 표면적인 수치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실제 국제 시장에 영향을 주는 숨은 요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닥친 식량 위기의 이면을 살펴보면 기후변화와 코로나19, 전쟁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고, 현재 나아가야할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현재 위기의 이유를 아는 것이다. 데이터와 통계는 우리에게 나아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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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과학동아 5월호, [특집] 긴급 진단 보고서 | 현실로 다가온 식량 위기
Part1. [특집] 데이터가 보여주는 식량 위기의 이유
Part2. [특집] 식량 위기의 뿌리엔 농사가 있다
Part3. [특집] 위기의 원인은 공급, 수요, 배분
Part4. [특집] 우리는 위기 앞에 경험과 기술을 나눴다
[이병철 기자 alwaysa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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