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보다 투자 택하는 청년들.. 투자는 카지노 게임이 아니다

신순규 시각장애인·BBH 시니어 애널리스트 2022. 5. 2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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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신순규의 월가에서 온 편지]
도박 위험 알리려 산 복권의 당첨
행운이 아니라 불행인 이유

자녀에게 도박의 ‘위험성’을 가르치려던 아빠가 있었다. 그에겐 아들과 딸 넷이 있었는데, 각각 25센트짜리 동전 하나씩 내게 했다. 이렇게 거둔 1달러로 그는 복권 한 장을 샀다. 돈을 잃는 경험으로 로또를 포함한 모든 도박에 관해 부정적인 기억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구입한 복권이 당첨되고 말았다. 아빠는 아이들의 대학 비용은 마련할 수 있었지만, 삶의 중요한 교훈, 즉 도박을 피하라는 걸 가르쳐주지 못했다. 오히려 도박으로 한꺼번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말았다.

일러스트=안병현

지어낸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슷한 경험을 얼마 전에 하게 됐다. 가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또는 지인들 소개로 나에게 연락해오는 대학생이 있다. 대부분 커리어에 관해 조언을 구하려는 목적이다.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가 대학 2학년이 되면서 금융으로 진로를 바꾼 H도 있고, 졸업을 앞두고 진로 조언을 구했던 J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대화하게 된 J가 유학생이란 것을 알고 나는 그를 도와줄 만한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KOTRA 뉴욕무역관 K-Move 센터의 박준섭 차장이었다. 그는 미국 취업을 원하는 한국 청년들을 돕는 일을 한다. 그래서 일자리를 구하는 J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특히 요즘 미국 고용주들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니, J처럼 양질의 교육을 받고 업무 경험이 훌륭한 유학생을 좋은 고용주에게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박 차장께 전화를 걸었다.

“요즘 미국의 실업률도 낮고, 직원들을 찾는 인기 직종도 많으니까, 유학생들 많이 도와주고 계시지요?”

그는 뜻밖의 답을 했다. 미국 취업을 원하는 한국 청년들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취직보다 투자를 하는 청년들이 많아져서, 미국 취업을 원하는 한국 청년들이 팬데믹 전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국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돕는 ‘야나 미니스트리’를 설립해 지인들과 함께해 왔다. YANA(You Are Not Alone), 즉 그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중에는 미국으로 데려와 유학시킨 학생도 있고, 미국에서 취업하도록 도운 친구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청년은 보육원을 떠나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인데, 이들이 직접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우리가 해줄 일이 많지 않다. 주위 사람들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전해 듣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야나 사람들에게는 괜찮다고 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부족함을 보이기 싫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취업보다 투자를 선호하는 청년들이 많아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른 친구가 바로 야나를 통해 알게 된 T와 G였다. 유난히 공부를 잘했던 T는 일류 대학교에 입학했다. G는 훌륭한 고등학교 성적과 인턴 경험으로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그런데 지난달 이 두 친구가 집에 앉아 투자만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빠 말에 따라 동전을 ‘투자’해서 자신의 대학 비용을 번 아이들처럼, 팬데믹 직후부터 투자했다면 주식은 항상 올라가는 증권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혔을 가능성이 높다. 며칠간 하락하는 경우가 있어도 주식에 투자하면 결국 취직해서 버는 돈의 액수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할 가능성 역시 높다. 처음 거래 몇 번이 취업한 친구의 몇 달 치 급여보다 많다면, 자신이 투자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할 수도 있겠다. 개인 투자를 주업으로 선택한 친구 중에 이런 천재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 짐작으로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초심자의 행운’이란 말이 있다. 포커 같은 놀이판에서 초보자가 뜻밖으로 운이 좋아 돈을 버는 경우를 말한다. 이것이 초보자를 끌어들이려는 도박꾼의 꼼수가 아니라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초보자는 자신감을 얻게 되고, 더 큰 돈을 걸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이윤이 최고일 때, 깨끗하게 털고 일어나는 이들도 있겠지만,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은 많은 사람을 도박판에서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증시와 노름판은 분명히 다르다. 대박을 꿈꾸거나 자산을 부풀리겠다는 목적으로 증시에 뛰어드는 이들 중에는 투자를 카지노 게임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초보자의 행운을 꽤 오랫동안 즐긴 이들이 연초부터 계속되는 주가 하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주식 투자만 믿고 취업과 사업 계획을 다 포기한 이들의 하루하루가 어떨지 궁금하다. 몇 년 동안의 생활비를 마련해 놓은 분들은 큰 충격은 피하고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초보 투자자들도 많을 것이다. 특히 T와 G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힘들면 언제나 연락해. 너희는 혼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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