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을 이전투구 판 만들어 놓고 추태만 부리는 교육감 선거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2. 5. 2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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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노정태의 시사哲]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와
손흥민의 1만 시간의 법칙

소년에게는 꿈이 있었다.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늘 한계에 부딪혔다. 선수 경력을 일찍 마무리 짓고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어른이 된 소년은 그 아픔을 곱씹었다. 어린 시절부터 기본기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만 있었더라면. 그는 아들이 열의를 보이자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배움과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오른발잡이로 태어난 아들이 왼발도 잘 쓸 수 있도록, 공이 몸과 닿는 감각을 본능에 새기도록 하루에 몇 시간씩 기본기 훈련부터 시켰다.

일러스트=유현호

그렇게 자라난 아들은 독일 분데스리가를 거쳐 세계 최고의 무대인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 진출했다. 주전 선수로 자리를 잡더니 결국 아시아인 최초로 EPL 득점왕이 되는 역사적 위업을 달성했다.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이야기다.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 선수, 그리고 그를 길러낸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의 실화다.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축구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선수가 되는 아이들은 소수다. 손흥민, 박지성, 차범근처럼 해외 리그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축구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그렇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나뉘고, 프로 중에서도 아주 일부만이 평균치를 뛰어넘는 특별한 성취를 이룬다. 말하자면 ‘아웃라이어’(outlier)가 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과 아웃라이어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심리학자 K 안데르스 에릭손은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장래에 세계 수준의 연주자가 될 수 있는 엘리트, 그저 평범하게 잘하는 모범생, 마지막으로 공립학교 음악교사 정도를 노리는 열등생. 에릭손에 따르면 이 세 그룹에는 타고난 재능의 차이가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단 하나, 연습 시간뿐이었다.

학생들은 다섯 살 무렵 연주를 시작하지만 대체로 서서히 흥미를 잃거나 마지못해 연습했다. 오직 엘리트 그룹에 속하는 학생들만이 확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일주일에 서른 시간씩 몰두했다. 경영저술가 맬컴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스무 살이 되면 엘리트 학생은 모두 1만 시간을 연습하게 된다. 반면 그냥 잘하는 학생은 모두 8000시간, 미래의 음악교사는 4000시간을 연습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이다. 톱클래스의 경쟁을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뜻이다. 제아무리 타고난 천재여도 그 정도 노력하지 않으면 빛을 발하지 못한다. 손웅정의 지도하에 엄청나게 연습한 손흥민뿐만이 아니다. 모차르트 역시 아버지의 조기 교육을 받았는데, 그런 그도 1만 시간 이상의 수련을 쌓기 전까지는 그럴듯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천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적어도 하루에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을 보낸, 1만 시간의 연습벌레들이다.

1만 시간을 연습에 매진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과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글래드웰에 따르면, “성인이 아닌 경우, 스스로의 힘만으로 그 정도의 연습을 해낼 수는 없다. 격려해주고 지원해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곤궁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연습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없으면 안 되므로 가난해서도 곤란하다. 대개의 경우, 특수 프로그램이나 특별한 종류의 기회를 붙잡아야 그 수치에 도달할 정도로 연습할 수 있다.”

필자는 <아웃라이어>의 번역자이므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웃라이어>의 주제는 공교육이다. 모든 것을 자율에 맡기는 미국식 교육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재능 있는 아이들을 끌어안지 못한다. 가난한 재능이 낭비되지 않게 보살피려면 학교에 일찍 나오게 하고 집에 늦게 보내야 한다. 아이들이 싫다고 해도 수학 문제를 끝까지 풀게 해야 한다. 그래야 변호사가 될 아이가 거리의 사기꾼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아웃라이어>는 미국 진보의 숙원인 강한 공교육 부활을 주장하는 책이다.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다. 맬컴 글래드웰이 칭송한 한국의 공교육은 이미 세상에 없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같은 소리나 하며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를 쏟아부어 자기 자식만 챙기는 각자도생의 이전투구 판으로 변한 지 오래다. 더욱 분노를 자아내는 건 그런 불평등한 변화를 이끄는 주체가 다름 아닌 자칭 진보 세력이라는 데 있다. 아이들에게 어렵고 힘든 공부를 시키지 말자고, 바보가 되어도 좋으니 행복하게 크게 하자며, 입시 컨설턴트가 판치는 나라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자식만은 외고로, 자사고로, 심지어는 해외유학까지 잘도 보내놓는다. 다른 그 어떤 공직도 아닌 교육감을 역임하고 있으며 현재 3선에 도전 중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대표적이다. 특목고 폐지를 밀어붙이는 조 교육감의 두 아들은 외고를 나왔다. 그것이 모순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2021년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중적이라는 비판은 달게 받겠다.” ‘내로남불’을 쿨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만인가? 본인이 주장하는 공교육 프로그램을 스스로가 지킬 수 없다면, 최소한 2022년 교육감 선거에 또 출마하지는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욱 한심한 건 보수 쪽의 대응이다. 사분오열되어 자기들끼리 헐뜯고 싸우는 추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정말 심각한 건 교육 철학의 부재다. 소위 ‘이해찬 세대’ 이전까지 대한민국은 학생들을 엄하게 혼내서라도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만든다는 목적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진보가 학생의 인권을 앞세워 그것을 부정할 때, 보수는 그 어떤 가치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는가? 그저 내 새끼만 대학 잘 보내면 그만이라는 무사안일주의, 가족이기주의로 일관하다가 오늘에 이르고 만 것 아닌가?

손웅정은 국가대표 축구 선수였다. 손흥민은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대단한 조기 교육을 받는 행운도 누렸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만한 재능과 열정을 가진 아이들이 또 태어난다. 축구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손웅정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손흥민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손흥민의 EPL 득점왕 등극을 축하하며, 대한민국의 신발끈을 다시 묶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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