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 하나님을 만나다] 열린 회랑이 얼굴인 교회, 이웃을 초대하다

서윤경 입력 2022. 5.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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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삼척방주교회
지난해 11월 준공된 강원도 삼척방주교회는 내부에 있던 유럽식 회랑을 밖으로 끄집어내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이끈다.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가 땅의 이야기를 담아 설계한 교회는 긴 회랑과 회랑에 연결된 3채의 건물에 주황색 기와를 얹어 주변 풍경과 어우러진다. 삼척방주교회 제공


기왓장 한 장, 버려진 예배당 의자 한 쪽 그리고 기도 한 조각, 믿음 한 조각. 그 조각들이 모여 예배의 공간이 됐다. 건물 내부에 산책로라며 만든 유럽식 회랑은 밖으로 나와 이방인의 발걸음을 안으로 이끈다.

강원도 삼척시 삼척방주교회는 생김새부터 예사롭지 않다. 교회 서승원 목사는 “생김새는 물론 건축의 모든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모든 게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야기 시작부터 놀랍다. 서울시 4대 총괄건축가인 건국대 건축대학 강병근 명예교수가 무료로 설계했다. 강 교수는 2005년부터 서울시 건축위원회, 2020년부터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한려해상공원 외도, 가평 프랑스문화촌 등을 설계한 한국의 대표 건축가다. 무엇보다 장애인·노인 등 약자를 위한 건축 연구에 힘썼고 1997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정을 이끌기도 했다.

서 목사와 강 교수는 ‘어쩌다’ 만났다. 서 목사는 교회가 있던 바닷가에 화력발전소와 가스 기지국이 들어오면서 이주를 준비했고 예정에 없던 건축까지 하게 됐다.

2017년 서 목사는 삼척시 건축 자문을 맡은 강 교수에게 설계를 요청했고 강 교수는 그 자리에서 수락하는 대신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조건은 교회 건축에 이야기를 담는 키워드가 됐다. 방주교회를 찾아 서 목사에게 이야기를 듣고 이틀 뒤 서울시 제2청사 사무실에서 강 교수를 만났다. 마음껏 교회를 본 뒤 만나자는 강 교수 제안에 따른 것이다.

설계 변경은 없다

서 목사는 교회 부지를 찾던 2018년 차량에 함께 탄 강 교수가 “저런 곳이면 좋겠다”는 말을 흘리듯 했다고 한다. 지금의 교회 부지다. 교회 앞은 왕복 2차선 도로이고 바로 옆엔 동해선 원덕역(가칭)을 건설 중이다. 강 교수는 “노인이 많아 비탈은 안 되고 교통편은 좋아야 하는데 딱 그런 땅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서 목사는 강 교수 말을 놓치지 않고 매입에 나섰지만 땅 주인이 3명이라 쉽지 않았다. 가운데 300평만 개인 소유, 양옆은 시유지 국유지였다. 서 목사는 “놀라운 일이 생겼다. 시는 땅을 불하하겠다고 했고 국유지도 우리에게 먼저 사겠냐고 했다”고 말했다.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가 설계한 삼척방주교회 초기 설계도면. 강병근 교수 제공


부지를 확보하니 강 교수가 설계에 들어갔다. “땅이 지어달라는 대로 짓는다”는 설계 철학이 반영됐다. 도로를 따라 길이 63m 회랑이 횡(橫)으로 뻗었고 건물 세채는 회랑과 종(縱)으로 연결됐다. 설계도면만 보면 지금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서 목사와 성도들은 강 교수에게 모든 걸 맡겼다.

강 교수가 시골교회를 위해 건축에 힘쓴 건 딱 하나다. 냉난방 등 유지관리의 편리함이다. 보통 2중까지 하는 단열재는 4중으로 했고, 포르투갈식 기와를 얹은 지붕의 두께는 30㎝나 됐다. 교회 전체엔 천창과 함께 300여개 창도 냈다.

강 교수는 “바람길을 만들고 햇빛이 들어오게 했다”며 “천창은 위로 올라가는 더운 공기를 밖으로 나가도록 하고 두꺼운 벽과 지붕은 난방 효율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교회는 지난해 11월 준공허가를 받았지만 건축은 끝나지 않았다. 어울리는 조명을 찾지 못한 곳엔 전선이 나와 있고 임시로 3500원짜리 등을 단 곳도 있다. 외부엔 십자가도 없다. 이 지역에 처음 온 사람 중 교회인 걸 모르는 경우도 있다. 강 교수가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강 교수는 “십자가를 세울 장소를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십자가보다 성도들 가슴에 십자가 하나씩 달기를 원했다”고 강조했다.

건축 작정 헌금은 받지 않는다

원하는 걸 하나도 반영하지 못했음에도 성도들은 건축하는 내내 즐거웠다고 한다.

서 목사는 “디자인 시대를 넘어 감성의 시대, 스토리 시대다. 성도들이 직접 건축에 참여하는 옛날 방식으로 교회를 지었는데 그게 스토리가 됐다”고 말했다.

기술이 필요한 골조공사만 건설업체가 했고 나머지는 성도들이 다 했다. 바닥에 벽돌을 깔고 실리콘 작업을 했다. 직접 재단한 원목을 창틀과 문짝에 붙이고 도배와 청소도 했다.

모든 과정에 하나님이 개입하는 걸 경험하기도 했다. 100일간 골조공사를 하면서 비 때문에 작업을 멈춘 적이 없었다. 서 목사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과 마친 뒤에 비가 왔다”며 “골조공사를 끝내고 업체 사람은 공사 비용 등을 속일 수도 있을 텐데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삼척방주교회 지붕엔 성도들의 정성으로 모은 포르투갈산 기와 6만여장이 올려졌다. 삼척=신석현 포토그래퍼


자재 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겼다. 지붕에 얹은 6만장의 포르투갈산 기왓장은 성도들의 정성이다. 교회는 장당 1200원짜리 기왓장을 최대 100장까지 헌신할 수 있게 했다. 주황빛 기와는 교회의 시그니처다. 강 교수는 “하나님이 방주를 만들 때 옷칠하시던 마음을 기왓장과 연결했다”며 “수량을 100장으로 정한 건 ‘내가 다 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는 대신 모두의 기억에 남게 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교회 식당 바닥은 무료로 받은 유럽 타일 5종류가 조화롭게 깔렸고, 목제 십자가가 올려진 창틀은 단열에 공들인 두꺼운 벽체가 그대로 드러난다. 십자가는 서승원 목사가 만들었다. 삼척=신석현 포토그래퍼


유럽산 바닥 타일은 유로세라믹 김종국 회장이 창고에 보관하던 걸 내놨다. 서 목사는 “100여종의 타일은 무늬와 색상 등이 제각각이라 모자이크하듯 배치했는데 예상치 못한 그림이 나왔다”며 “예배당 앞 로비 바닥은 모자란 수량을 맞추다 십자가 모양이 됐다”고 전했다. 벽돌과 주방기구, 내장재도 관련 업체가 나눔으로 기부했다.

직사각형 예배당은 40평의 작은 공간에도 층고가 높아 시원함을 주고, 강단 바닥은 성도들이 버려진 예배당 장의자를 재가공해 깔아 경건함을 높였다. 삼척=신석현 포토그래퍼


예배당으로 들어섰다. 직사각형 구조 양옆에 기둥이 서 있고 강단 뒤는 반원형 돔을 이뤘다. 400평 교회 부지 중 40평만 차지했지만 12m 층고는 갑갑함 대신 청량감을 줬다.

강단을 가리키며 서 목사가 “이상한 거 없냐”고 물었다. 답을 못 찾으니 “강단이 낡아 보이지 않냐”는 힌트를 줬다. 그제야 강단 마룻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준공한 것 치고는 오래돼 보였고 색도 제각각이었다. 50년 된 교회에서 버린 70여개 장의자를 목사와 성도들이 분리해 바닥에 깔았다. ‘집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됐다’는 마태복음 21장을 따랐다.

2020년 건축에 들어간 삼척방주교회는 골조 등 기술적인 부분 외엔 성도들의 손으로 세워졌다. 삼척방주교회 제공


서 목사는 “인천의 한 목사님이 전화했다. 자신들이 버린 장의자가 우리 교회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성도들이 수십년 눈물로 기도한 의자라고 했다”고 전했다.

공사 기간 중 민원은 없었고 원자재 가격이나 인건비도 건축이 끝난 뒤 올랐다. 이로써 교회는 건축 작정 헌금 없이 건축을 마쳤다.

주민에게 열린 공간

서 목사는 2004년 연고도 없는 삼척에 방주교회를 개척했다. 전도가 어려운 시골교회 특성을 고려해 무료 공부방을 열어 아이들 전도부터 시작했다. 상생을 위해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만 공부방에 오도록 했다. 서울과 달리 사회복지 개념이 없던 곳이라 무료로 공부방 하는 서 목사를 간첩으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지자체는 방주교회에 아동센터 운영을 요청했고 다양한 사회복지 사업도 진행했다.

새로 지은 교회 안에는 지역공동체를 섬기는 서 목사의 비전과 주민에게 열린 공간이 돼야 한다는 강 교수의 바람이 담긴다. 2층엔 오는 7월 기업과 단체의 지원을 받아 원덕아동센터 인테리어 작업에 나선다.

회랑의 오른쪽 끄트머리 건물엔 카페가 들어선다. 커피만 파는 게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재정 자립을 돕기 위해 지역 먹거리와 특산품도 팔 계획이다. 삼척 주민들은 2000년 큰 산불이 난 뒤 주 수입원인 송이버섯을 판매할 수 없게 됐다. 예배당을 무료 예식장으로 제공하고 건축하며 장만한 건설 장비로 어려운 이웃의 집도 보수해 줄 예정이다.

장애인·노인을 위한 강 교수의 건축 철학도 반영했다. 교회의 가족화장실엔 휠체어는 물론 유모차, 노인 보행기 모두 들어갈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공간도 확보해 놨다. 비용만 확보되면 바로 공사할 수 있다. 2020년 마스크 없이 기공예배를 드린 교회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올가을 봉헌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삼척=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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