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용산공원, 화합·포용의 시험대

김미리 문화부 차장 2022. 5.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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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가 '평화, 화합, 포용'의 정신을 담아 그린 '열린 손'.

6년 전 김건희 여사를 취재 현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의 기획으로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 전시에서였다.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강조했던 그림이 있었다. 르코르뷔지에가 인도 찬디가르시(市)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했을 때 그린 ‘열린 손’이란 그림이었다. 하늘 향해 손가락을 벌린 손 형상의 이 그림을 통해 르코르뷔지에가 말하고자 한 것은 ‘평화, 화합, 포용’의 정신이었다.

전시가 열릴 당시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점화됐을 무렵. 블랙리스트 존재를 시인한 문체부 인사가 전시장을 찾았다가 이 그림을 언급하며 ‘진영을 뛰어넘는 문화 포용’을 강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열린 손’의 지혜가 떠오른 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용산공원을 보면서였다. 주한 미군이 반환하는 용산 기지를 공원화하는 ‘용산공원’ 계획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발표된 후 18년째 진행 중이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2016년까지 미군이 기지를 완전히 반환할 예정이었지만 진행 속도가 더뎠다.

이 상태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라는 강력한 변수가 생기면서 용산공원이 새 국면을 맞았다. 땅을 뜯어놓고 보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선 국방부 청사는 용산공원 대상 부지가 아니다. 우리 국방부 소유이므로 애초에 반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남산 자락부터 이촌동까지 이어지는 용산 기지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용산공원의 허리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무실과 용산공원 둘을 떼놓고 생각하기란 힘들다. 윤 정부에서도 대통령실과 용산 반환 부지를 연계해 미국 백악관처럼 시민 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구상을 밝힌 상태다. 미군도 집무실 이전 뒤 일부 땅을 예정보다 빨리 반환하는 등 협조적이다.

겉으론 순탄해 보인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정치적 역학 관계가 얽혀 있다. 용산공원 프로젝트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두 사람이 있다. 친문 인사로 알려진 건축가 승효상과 유홍준 전 문화재청이다. 승효상은 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 공모에 당선해 10년간 밑그림을 그려오고 있다. 아시다시피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50년 지기로 양산 사저 설계자다.

유 전 청장은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이다. 유명무실한 감투가 아니라 공원 조성과 관련된 주요 사항을 심의하는 자리다. 국토교통부 산하이던 것을 2019년 국무총리실 산하 위원회로 바꾸고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유 전 청장을 위원장으로 위촉했을 정도로 힘을 실어줬다. 3년 임기가 끝난 지난 2월 유 전 청장은 연임했다. 정부 쪽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맡기 때문에, 이제 한덕수 신임 국무총리와 유 전 청장이 공동위원장이 됐다.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새 정부의 용산 대계(大計)가 성공하려면 이들의 협조가 필수지만, 이 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이들이 선뜻 입장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정파를 떠나 담당 건축가는 새로운 변수를 감안해 안을 조정하고, 추진위원장도 합리적으로 심의했으면 한다. 윤 정부 역시 이들이 용산 땅을 연구해온 지난 10년 시간에 대한 존중 위에 새 그림을 얹었으면 한다. ‘조속히’ ‘신속히’ 같은 부사를 남발하며 무리하게 밀어붙이지도 않길 바란다. 용산공원 시범 개방을 공지했다가 하루 만에 취소하는 식의 촌극은 다시 없길 바란다.

100년 넘게 외세의 그늘에 있다가 우리 품으로 돌아온 땅이다. 절대 진영 논리에 따라 졸속으로 짜깁기해선 안 된다. 이 땅의 진짜 주인은 좌도 우도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다. ‘열린 손’을 내밀어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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