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손으로 글 쓰기
오래간만에 거리 행사 취재를 나갔다가 살짝 당황했습니다. 펜으로 수첩에 적는 사람이 저밖에 없더군요. 초년병 기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길바닥에 앉아 무릎 위에 노트북 컴퓨터를 놓고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요즘 애들은 수첩을 안 쓰나 봐.” 함께 온 사진부 후배에게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 “간혹 쓰시는 분도 있긴 하더라고요. 대부분 노트북이나 휴대전화 메모장 쓰지만.” 고개를 끄덕이다 깨달았습니다. 아, 그 ‘간혹’이 바로 나구나….
이탈리아 캘리그래퍼 프란체스카 비아세톤(61)의 에세이 ‘손글씨 찬가’(항해)를 읽다가 그 경험이 떠올라 피식 웃었습니다.
“수년 전, 학생들과 손글씨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좋아하는 가수에게 사인을 받는 것과 문자메시지를 받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좋은지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문자메시지도 좋다’는 것이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서명과 문자메시지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걸까?”
비아세톤은 이어서 말합니다. “손으로 쓴 문장을 읽을 때와 컴퓨터로 쓴 문장을 읽을 때 우리는 감정적으로 큰 차이를 느낀다. 그 차이는 숙고해볼 만한 것이다. 내가 쓸 때, 나는 ‘당신에게’ 쓴다. 글씨를 쓰기 위한 도구를 손에 쥐고, 어떤 종이에 쓸 것인지 정해서, 내 글씨체로 쓴다.”
손에 쥐기 편한 두께에 지질(紙質)이 좋은 수첩, 종이 위를 매끄럽게 달리는 펜이 일터에서의 무기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사 작성하려 수첩을 뒤적이면 취재 현장 분위기, 인물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떠올랐죠. 손글씨는 감정을 반영하는지라 상황에 따라 필치도 달라졌으니까요. 그런 기억 때문일까요? 디지털 시대의 무기는 새로워야 한다는 걸 머리론 알면서도 이탈리아 소설가 세바스티아노 바살리의 이 문장에 이끌려 갑니다. “내 마음은 종이에 묻어도 좋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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