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오줌풀 따고 놀던 반달가슴곰.. 야생화 찍던 사람 무서워 숨바꼭질[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글·사진 지리산=전승훈 기자 입력 2022. 5. 28. 03:02 수정 2022. 5. 2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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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이 살아숨쉬는 지리산


○ ‘숲속의 농부’로 돌아온 반달가슴곰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 3대 주봉이다. 봉우리 이름은 원래 길상봉인데, 지리산을 지키는 산신 노고할미의 제사 터가 있다고 하여 노고단으로 불린다. 오른쪽 위 사진은 지리산 종복원센터에 살고 있는 반달가슴곰과 노고단 주변에 피어난 야생화 병꽃나무.
지리산국립공원에는 반달가슴곰이 산다. 검은색 털과 흰색 V자 무늬가 선명한 반달곰은 단군 신화의 주인공으로, 반만년 동안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살고 있는 모신(母神)적 존재다. 호랑이의 멸종 이후 한반도에 살고 있는 가장 큰 맹수이기도 하다. 야생의 산속에서 나무를 타고 있을 반달곰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지리산은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반달가슴곰은 ‘숲속의 농부’라고 불립니다. 곰은 나무열매와 과일을 주로 먹는데, 배설물에 씨앗이 함께 나와 숲속 이곳저곳에 퍼집니다. 씨앗에는 발아를 억제하는 화학물질이 있는데, 곰의 배 속을 거친 씨앗은 화학물질이 씻겨져 훨씬 발아가 잘됩니다. 반달곰이 훌륭한 ‘씨앗 배달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김진경 국립공원공단 자연환경해설사)

전남 구례 화엄사 인근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 종복원기술원. 이곳 반달곰생태학습장에서는 야생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반달가슴곰 27마리를 만날 수 있다. 방사 훈련을 진행 중인 곰도 있지만 대부분 야생 적응에 실패해서 구조해온 곰들이 많다. 덫에 걸려 한쪽 발을 잃었거나 등산객이 던져준 먹이에 길들여진 곰들이다.

“등산객들이 산에서 곰을 만날 경우 과일이나 과자를 던져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생활에 길들여진 곰은 등산로에서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이 던져준 음식을 먹고 이빨이 다 썩고, 야생성을 잃은 곰은 더 이상 숲속에서 살 수 없습니다.”

이곳에 한번 들어온 반달곰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긴 어렵다고 한다. 반달곰은 관람객이 가까이 가면 ‘똑, 똑, 똑, 똑…’ 하며 마치 목탁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곰이 사람을 무서워하며 다가오지 말라고 경계할 때 내는 소리다.

“지리산을 등산할 때는 반드시 정해진 등산로로 다녀야 합니다. 평소 사람들이 안 다니는 비법정 탐방로에는 곰이 생활하고 있을 수 있거든요. 곰도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산에서 ‘똑똑똑’ 하고 목탁 소리를 내면서 경계하고 있는 곰과 마주친다면, 뒷걸음질하면서 피하면 됩니다.”

반달가슴곰은 한반도와 러시아 연해주, 아무르, 중국 동북부 지방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 널리 서식하는 아시아 흑곰(Asiatic Black Bear)이다. 반달가슴곰 생태탐방 프로그램은 매일 5회(오전 10시, 11시, 오후 1시 30분, 2시 30분, 3시 30분) 1시간 정도 진행된다.

○야생화가 만발한 노고단



지리산 노고단(老姑亶·해발 1507m)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 3대 봉우리 중 하나다. 지리산 종주를 하는 연간 30만 명의 등산객 중에 90%가 출발하는 봉우리다. 요즘 노고단에는 털진달래, 철쭉, 병꽃나무, 쥐오줌풀, 복주머니란 등 야생화가 만발해 있다. 구상나무를 비롯해 아고산대(亞高山帶) 특유의 키 작은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는 평원처럼 생긴 노고단은 선선한 바람과 변화무쌍한 날씨가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다. 노고단 정상에 쌓여 있는 돌탑 앞에서는 노고할미에게 바치는 산신제가 열린다. 할미는 우리말 ‘한’과 생명의 뿌리를 뜻하는 ‘어머니’를 합쳐 만든 말로 창조신화 속 대모신(大母神)을 상징한다.

노고단은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국립공원의 시작이자 훼손, 복원의 역사를 지켜본 증인이다. 이곳엔 일제강점기인 1925년부터 1937년까지 외국인 선교사들의 휴양지 56동이 건설되면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광복 후 노고단에서 스키 대회가 열리고, 여수순천10·19사건과 6·25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을 위해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크게 훼손됐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성삼재 관광도로가 개통되면서 노고단 주변은 야영객들이 쳐놓은 텐트로 몸살을 앓았다. 노고단 주변이 메마른 초원이나 사막처럼 보일 정도였다.



결국 1991년부터 자연휴식년제를 적용해 생태를 복원하고, 2007년에는 마지막 군부대가 철수했다. 현재는 하루 1870명만 예약을 받아 탐방이 가능하다. 윤세영 해설사는 “자연은 훼손되긴 쉽지만 복원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을 노고단이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리산 생태탐방원

국립공원공단이 운영하는 지리산 생태탐방원은 북한산에 이어 2015년 두 번째로 문을 연 생태탐방원이다. 자연 속에서 숙박하면서 천년고찰 화엄사 탐방부터 노고단 등반, 반달가슴곰 생태관찰, 녹차를 맛보는 ‘별멍 야생화 차담’ 등 10여 개의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경험할 수 있다. 지리산생태탐방원의 총 객실 수는 20개, 100명 정도 동시 수용이 가능하다. 4인 기준 기본 방은 6만6000원. 국립공원 생태탐방원은 현재 북한산, 설악산, 소백산, 가야산, 한려해상, 지리산, 무등산, 내장산 등 8곳이 있으며 국립공원 예약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있다.

글·사진 지리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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