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세계 환경운동 거대한 흐름 조명

박성준 2022. 5. 2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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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발전' 구호 딜레마
탄소배출권 문제 등 전말 펼쳐
1970년 전후를 '생태 혁명' 규정
이후 환경운동사는 '생태의 시대'
인류 역사상 최초, 최대의 조직된 시위가 벌어졌던 1970년 4월22일 제1회 지구의 날 당시 미국 뉴욕 모습. 당시 미국 대통령 닉슨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진보적 비전으로 환경보호청을 설립하고 환경보호의 근간이 되는 법 제정에 나섰다. 열린책들 제공
생태의 시대/요아힘 라트카우/김희상 옮김/열린책들/4만5000원

인류 최우선 과제인 ‘환경운동’은 언제 시작됐는가. 세계를 전화(戰火)에 빠뜨린 나치스 독일과 전후 미국 재건 프로젝트인 뉴딜은 환경운동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1980년대 소련 체르노빌 사태는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가.

1000여쪽에 달하는 장대한 신간 ‘생태의 시대’는 이 같은 다양한 질문에 답하며 역사 속 세계 환경운동의 거대한 흐름을 조명한다. 저자는 환경 역사의 기초를 닦은 세계적인 환경 역사학자 요아힘 라트카우. 현대사회 최대 의제가 된 환경운동이 등장하기 전 낭만주의성 환경운동이었던 18세기 흐름과 자연 숭배로부터 환경주의 논의가 본격화한 1970년 이후 생태 시대의 다채로운 면면을 보여 준다. 환경 문제에 대한 기념비적 저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출간과 전설이 된 ‘그린피스’의 미디어 전략, 1992년 리우 환경회의에서 만들어진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구호의 딜레마, 탄소배출권 문제 등 환경운동의 변곡점이 된 다양한 역사적 사건의 맥락과 전말이 펼쳐진다.
요아힘 라트카우/김희상 옮김/열린책들/4만5000원
환경운동의 중요한 분기점은 1960년대 후반 인류의 우주 진출이다. 지구 궤도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은 ‘푸른 별’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지구를 단일체로 보게 만든 이 사진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자’는 열망을 끌어올렸다. 이후 1970년 4월22일 ‘지구의 날’이 제정됐다. 지금은 세계 각국이 기념하는 ‘지구의 날’은 인류 역사상 최초, 최대의 조직된 시위였다. 제창한 사람은 위스콘신주의 민주당 상원 의원 게일로드 넬슨이다. 역사의 기이함은 이 같은 환경운동이 하필이면, 진보 진영에선 환영받지 못했던 닉슨 대통령 시절 추동력을 얻었다는 점이다. 닉슨 치하에서 미국 환경보호청이 창설되었으며, 환경보호의 근간이 되는 법이 속속 제정되었다. 닉슨 자신은 절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정부가 이뤄 낸 이런 성과에 자부심을 갖지도 않았다. 심지어 환경운동에 대한 냉소적인 비아냥거림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닉슨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베트남전쟁의 패착으로 빗발치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중적이며 진보적으로 비치는 대안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했다. 때마침 급부상한 환경보호 의제야말로 적절한 대안이었다.

이후 베트남전쟁 중 고엽제 살포와 ‘인구 폭탄’으로 인한 불안 등은 1970년을 전후로 국제사회에 ‘환경’이라는 주제가 부각되게 만든다. 공해, 핵에너지, 산성비 등 이전에 없던 문제가 조명받기 시작했다. 관련 시민단체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 시기에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보호’ 맥락에서의 ‘환경’ 개념이 형성된다. 저자는 1970년 전후를 ‘생태 혁명’으로 규정하고, 이후 환경운동의 역사를 ‘생태의 시대’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환경운동은 세계사 흐름과 맞물려 국제사회 화두로 떠올랐다.

환경과 자연이 무엇인지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에 환경운동에는 갈등 상황도 다양하다. 저자는 체르노빌 사태와 소련 붕괴의 관련성, 그린피스로 대표되는 환경보호단체의 언론 플레이 및 기부금 확보 경쟁, 미국의 레이철 카슨, 독일의 페트라 켈리, 중국의 다이칭 등 환경운동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의 삶을 충실히 소개한다.

그린피스가 선두에 섰던 환경운동은 그동안 미디어를 통한 자기 연출과 홍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운동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거나, 로비를 통해 정치가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직접적 영향을 주려는 시도는 이로써 뒷전으로 내몰린다. 그린피스는 이런 맥락에서 운동의 초점을 육지보다는 바다에 두었다. “육지에서 벌이는 그린피스 운동 스물다섯 번의 효과는 바다에서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이는 단 한 번의 떠들썩한 행사만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책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는 물론, 세계 환경운동을 주도한 미국, 아프리카 야생과 남미 열대우림 원주민들의 목소리, 동아시아의 환경운동가 등 환경운동에 얽혀 있는 다양한 사람과 집단 간의 관계도 꼼꼼하게 다루었다. 보고서 ‘성장의 한계’로 유명한 ‘로마 클럽’, 1992년 리우 환경회의, 1997년 교토 기후회의 등 생태 시대에 등장하는 각종 국제회의의 배경과 실상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가령 리우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구호는 이상적인 해결책이었다. 냉전의 종식으로 어차피 체제 경쟁의 일환으로 이뤄졌던 제3세계에 대한 개발 지원 주 동기가 사라진 상황에서 개발 지원은 환경보호 의제 덕에 새로운 정당성을 얻었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환경운동의 힘은 요란한 정상회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풀뿌리 운동이 키워 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각 문화의 특수성을 살리고 지역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야말로 글로벌한 환경운동의 핵심 동력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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