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 개척자 전길남 박사의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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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5월, 경북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에서 개발자 수십 명이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SNU'라는 알파벳 세 개가 컴퓨터 화면에 천천히 완성되자 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독자적 인터넷 개척의 순간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당시 책임연구원이던 전길남 박사다.
전 박사의 전기를 따라가다 보면 'IT강국'인 한국의 인터넷 발달사를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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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5월, 경북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에서 개발자 수십 명이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SNU’라는 알파벳 세 개가 컴퓨터 화면에 천천히 완성되자 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구미에서 250㎞ 떨어진 서울대에서 보낸,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프로토콜 패킷 통신’이 이뤄진 순간이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체적으로 컴퓨터 네트워크 연결(SDN)에 성공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독자적 인터넷 개척의 순간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당시 책임연구원이던 전길남 박사다. 1943년 오사카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난 전 박사는 1979년 한국 정부의 우수 해외 과학자 국내 유치 프로그램을 통해 귀국했다. 나사(미국 항공우주국)의 보이저 계획에 참가한 시스템 엔지니어, 전설적인 시스템구조연구실(SA랩)을 이끌던 카이스트 교수, 존 포스텔 상 수상자(2011), 인터넷 명예의 전당 헌액, 국민훈장 동백장, 체육훈장 기린장 등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IT 전문 기자인 저자는 2015년부터 7년간 그와 그 주변 인물들을 취재해 그동안 인터뷰를 통해 단편적으로 전해졌던 전 박사의 전기를 완성했다. 재일한국인으로서 처음 정체성을 자각한 계기 등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업적, 성품, 문제의식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전 박사의 전기를 따라가다 보면 ‘IT강국’인 한국의 인터넷 발달사를 목격할 수 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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