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팬덤정당은 지속불가능

한경환 2022. 5. 2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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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 총괄 에디터
‘대국민 사과’와 ‘586 용퇴론’ 불을 지핀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결국 백기를 들고 물러섰다. 박 비대위원장은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일선에서 열심히 뛰고 계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께 정중하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6·1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외부에 당의 분열로 비칠 수 있는 돌출적 행동에 대해 박 비대위원장이 사과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박 비대위원장은 그러면서도 “폭력적 팬덤정치와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은 굽히지 않았다. “민주당을 팬덤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 “팬덤이 무서워 아무 말도 못 하는 정치는 죽은 정치”라는 그의 최근 발언들의 연장 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논란이 된 대국민 사과와 586 용퇴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박 위원장이 민주당을 팬덤정당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건 중요한 발전이라고 평가한다. 더구나 이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자 실천이라고 높이 사고 싶다. 팬덤(fandom)의 사전적 정의는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을 이르는 말로, 통상 연예계나 스포츠계의 팬 집단을 일컫는 용어’이다. 팬덤정당이란 그런 팬덤 성향을 보이는 정당이다.

「 “팬덤 아닌 대중정당 만들겠다”
박지현 민주당 비대위원장 발언
지지층 확장하는 묘수 될 수도
강성 지지파만으로는 승리 어려워

선데이칼럼 5/28
민주당도 그렇지만 국민의힘도 언제부턴가 대중정당이라기보다는 팬덤정당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왔다. 당의 정강정책이나 고유 정체성보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전 대통령 후보, 윤석열 대통령 등 개인의 팬덤을 더 중요시하는 정당으로 비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이는 ‘제왕적’ 파워를 가진 절대권력자인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 같은 ‘개인 스타’ 중시 정당의 성격이 강한 한국의 정치 풍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스타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정치활동이 일면으로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짧은 시간에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단단히 결집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덤정당은 한편으로 매우 위험하기도 하다. 소수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지지자들의 의견이 쉽게 받아들여지는 정당은 탈선의 길로 빠지기 쉽다. 맹목적, 충성적, 무비판적 지지에 영합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팬덤정당에서는 선명성이 강한 극렬 팬일수록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들이 당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우리 스타님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정당이 돼서는 일반 대중의 뜻을 담아 내기가 어렵다. 강경파 지지자들이 ‘스피커’를 독점한다면 온건하고 합리적인 지지자들은 소외되기 마련이다. 원천적으로 당이 건강해지기 어려운 구조다. 이런 식이라면 상대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덜한 일반 시민들, 중도성 무당파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가 불리한 환경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런 유권자들이야말로 선거에서 당락을 결정지을 수 있는 캐스팅보터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이들을 포기하고서는 선거에서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지현 비대위원장은 “대선에서 졌는데도, 내로남불도 여전하고, 성폭력 사건도 반복되고, 당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팬덤정치도 심각하고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또 “자신과 다른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 잘못된 팬덤정치 때문에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넘겨 주었다. 잘못된 내로남불을 강성 팬덤이 감쌌고, 이 때문에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며 “민주당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렬 지지층, 문자폭탄에 절대 굴복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백번 맞는 말이며 일반 무당파 유권자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진정성 담긴 고백이다. 민주당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묘수이기도 하다.

요즘 민주당에선 소수이긴 하지만 ‘내부 총질’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고서라도 당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소신 있게 비판하는 인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박용진 의원은 “팬덤정치 혹은 권리당원 정치가 갖고 있던 한계가 분명하다”며 “문자폭탄 이런 거로 비치고 있는 일발주의, 반민주적인 행태도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민형배 의원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데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5선 중진의 이상민 의원은 “이렇게 정치해서는 안 된다”며 “고민이 있었겠지만 정치를 희화화하고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당이 건강해지려면 이처럼 따가운 지적과 활발한 토론, 생산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양심적인 내부고발자도 있어야 한다.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일방통행이어서는 곤란하다. 이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우리 편만으로는 절대 승리할 수 없다. 한계가 분명한 팬덤정당이 아닌 포용력을 가진 대중정당이 필요한 이유다.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정치는 위험하다. 개딸(개혁의 딸)에만 의존하는 선거운동이나 정치는 위기를 부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 캐릭터에 압도당했던 미국 공화당은 결국 4년 만에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어느 당이건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대중정당이 돼야 한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필요하다. 비단 민주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에서도 윤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을 용기 있게 비판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이번 지방선거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심판대가 될 것이다.

한경환 총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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