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다시 시동 거는 부동산 정치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다주택자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지난해 1주택 실수요자의 종부세 과세 기준을 11억원으로 상향할 때도 다주택자의 과세 기준은 손대지 않았다. 당내에서는 다주택자는 ‘투기세력’이므로 되레 더 무겁게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많았다. 하지만 고가 1주택 소유자보다 저가 2주택 소유자의 종부세가 터무니없이 더 많아 논란이 일었고, 이를 지방선거 며칠 앞두고서야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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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주택자의 종부세 완화한다면서
또 저가·고가 다주택자 편가르기
」
불합리한 상황을 바로잡겠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지난 5년간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보여 줬던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편가르기 부동산 정치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민주당에 따르면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다주택자 중 종부세 대상자는 48만6000명에서 24만9000명으로 48.8% 줄어든다. 하지만 나머지 다주택자는 올해(과세기준일 6월 1일) 종부세가 되레 상승한다. 민주당이 개정안에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없앴기 때문이다. 지난해 95%였던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올해 100%다.
종부세는 공시가격에서 기본공제 금액을 제외한 뒤 대통령령에서 정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해 과세표준을 산출한다. 이 비율을 올리거나 내리면 세금이 확 늘어날 수도, 반대로 줄어들 수 있다. 특히 국회 문턱을 넘지 않고 정부가 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도 종부세 부담 완화 공약 이행을 위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을 2018년 이전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민주당은 이 싹을 잘라 소유 주택 합산 11억원을 초과하는 다주택자는 투기꾼이니 종부세를 더 내고, 11억원 이하는 다주택자이긴 하지만 저가주택 소유자이니 세금을 면제해 우리 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공정시장가액비율 폐지 명분으로 내세운 건 실효성이다. 올해 비율이 100%가 되기 때문에 사실상 존재 의미가 없어졌고, 이에 따라 없애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시장가액은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땅값이나 집값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공시가격이 기계적으로 상승하는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2009년 도입한 것이다.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해 납세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장치라는 얘기다. 이를 없애겠다는 건 윤석열 정부가 공정시장가액을 악용(?)하는 것을 미리 막겠다는 취지로밖에 안 읽힌다.
그런데 이 비율을 제대로 악용한 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다. 2018년 9·13 대책에서 다주택자를 잡겠다며 80%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2019년부터 매년 5%포인트씩 올려 2022년 10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9·13 대책에선 종부세율도 인상했는데, 세율과 과세표준이 함께 오르면서 종부세는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2017년 주택분 종부세수는 3878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5조7000억원으로 1462% 늘어났다.
민주당은 특히 이번 개정안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공제금액 6억원은 그대로 뒀다. 이게 의미하는 건 결국 다주택자라도 저가주택 소유자는 우리 편이고, 고가주택을 소유한 다주택자는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주택자 중 종부세 대상의 절반 정도만 우리 편으로 만들면 6월 1일 지방선거, 더 나아가 지지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계산이 선 것이다. 다주택자의 종부세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집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모두 힘들게 한, 국민들끼리 등지게 한 부동산 정치가 이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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