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단지 입주 차질, 반시장적 '분상제'에 발목 잡혀

황건강 2022. 5. 2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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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중단 심층 분석
공사비 증액 계약을 두고 조합집행부와 시공단이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가 지난달 15일 전면 중단됐다. ‘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 사업’으로 꼽히는 이 공사는 공정률(공사진행률) 52%에서 멈춰선 채 완공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뉴시스]
단일 아파트로는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의 공사 중단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되레 갈수록 공사비 증액 계약은 무효라는 재건축조합과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시공사 간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고 있다. 건설사들은 18일 타워크레인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한 번 철거하면 다시 설치하는 데 3개월이 걸릴 정도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사실상 재건축조합과 시공사의 결별 선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최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중재에 나서긴 했지만, 여전히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1만2000가구가 넘는 초대형 아파트의 건설 공사가 늦어지면서 주변 부동산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로 들어 설 둔촌주공은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규모 전용면적 29~167㎡ 1만2032가구로, 당초 내년 8월 입주 예정이었다. 단일 단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2019년 입주한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가구)보다 2522가구 더 많다. 내년 서울 입주 예정 물량(2만3200여 가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당초 계획대로 입주하면 서울과 주변 수도권 지역의 전세난 해갈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대규모 재건축, 전세시장 안정에 기여

헬리오시티만 해도 주변 전세시장 안정에 큰 역할을 했다. 2018년 8억원대 후반에 시세를 형성했던 인근 잠실 엘스 아파트 84㎡ 전세값은 헬리오시티 입주 직후 8억원대 초반으로 하락했다. 2008년 엘스·리센츠·파크리오 등 송파구 잠실동 일대 재건축 아파트 3개 단지 1만8100여 가구가 한꺼번에 입주했을 때는 전셋집이 남아도는 역(逆)전세난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계약갱신청구권 등 이른바 임대차 2법으로 전셋값이 급등한 데다 올해 8월부터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임차인들의 계약 만료가 돌아온다”며 “전세 등 임대차 시장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초대형 단지의 입주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둔촌주공 재건축아파트는 빨라야 2024년 말이나 2025년 초에 입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마저도 공사가 당장 다음 달 재개된다는 단서가 붙는다. 공사를 앞당기려면 무엇보다 최근의 재건축조합과 시공사간 강대강 대치가 끝나야 하는데, ‘공사비’라는 돈과 관련된 문제여서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현 조합 집행부는 시공단을 상대로 공사비 증액 계약의 정당성을 문제 삼으며 소송에 나서는 등 강경한 입장이다. 반면 시공단 역시 현 집행부와 협상에 응하지 않는 상황이라 사태 진전 가능성이 낮은 상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당장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는 변수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강동구청이 23일부터 진행 중인 합동점검 정도다. 이들 기관은 6월 3일까지 실태점검을 마치고 1~2주 동안 조합의 소명을 들은 뒤 처분 방법을 결정하는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합동점검 결과에 따라서는 행정지도나 시정명령, 고발 등의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정당성에서 타격을 입은 현 조합 집행부가 물러날 가능성도 거론된다.

반면 점검 결과 뚜렷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조합과 시공단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공사 중단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합동점검이 진행되면서 시공단 측에선 타워크레인 철거를 일단 중단했는데, 별다른 상황 변화가 없다면 철거 작업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되는 때문이다. 이은형 건설산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둔촌주공 사태는 금전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해결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며 “정부와 서울시의 합동점검 결과가 나오고, 필요하다면 고발 등의 조치가 모두 진행된 뒤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만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둔촌주공 사태의 발단은 공사비 증액이다. 2020년 6월 당시 둔촌주공 A조합장과 시공단(현대건설·대우건설·HDC현대산업개발·롯데건설)이 원자재 가격 급등을 반영해 공사비 5600억원을 증액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조합원들이 A조합장을 해임하면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됐다. 기존 조합장을 해임하고 지난해 5월 새로 출범한 재건축조합 집행부는 A조합장이 조합원 동의 없이 맺은 계약은 법적·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어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증액 없이는 사업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시공단은 공정률(공사진행율) 52%에서 공사를 중단했다.

사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사업 추진 단계에서부터 입주까지 10년, 20년이 족히 걸리기 때문에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가 빈번한 편이다. 가장 큰 요인은 설계 변경인데, 법이나 제도가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조합원들이 인테리어 등 시설 업그레이드를 요구해 설계를 변경하거나 인테리어 공사비가 늘어나기도 한다. 물가상승률 만큼 인건비·자재비가 오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둔촌주공 재건축조합이 이를 모를 리 없는데, 문제는 현행 제도상에서 시공사의 요구대로 공사비를 증액하면 재건축조합 입장에서는 사업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용적률 상향에 따라 가구 수가 증가하면 그 만큼 일반에 분양을 하고, 여기서 얻은 분양 수익금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모자라는 공사비는 조합원들이이 ‘추가분담금’을 내 마련한다. 용적률 상향 폭이 커 일반분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반분양 분양가가 비싸면 비쌀수록 조합원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다. 둔촌주공의 경우 일반분양 물량이 4786가구로 적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분양가가 걸림돌이다. 둔촌주공은 문재인 정부가 아파트값 상승을 막겠다며 2019년 분양가 상한제를 투기과열지구 내 민간택지로 확대하면서 상한제 대상이 됐다. 상한제는 정부가 분양가를 통제하는 반(反)시장적 제도로, 주변 시세나 들어간 비용이 아닌 땅값에 정부가 정한 기본형 건축비를 더해 분양가를 산정해야 한다. 문 정부는 고(高)분양가가 주변 집값을 자극하고, 이게 다시 비싼 고분양가로 이어진다고 봤다.

둔촌주공 일반분양 물량의 상한제상 분양가는 3.3㎡당 평균 2900만원으로 당초 조합 측이 책정한 분양가(3.3㎡당 평균 3550만원)보다 18%가량 적다. 그만큼 조합 수익이 줄고, 이는 그대로 조합원들의 추가분담금 상승으로 이어진다. 조합 측이 마냥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 6월 일반분양을 진행한 신반포3차 재건축(래미안 원베일리)의 경우 상한제로 인해 조합원 분양가(3.3㎡당 약 5560만원)가 일반분양 분양가(3.3㎡당 평균 5273만원)보다 5%가량 비싸기도 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전 세계적인 원자재 대란 속에 건설 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공사비 추가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제도적으로 분양가를 제한하니 누가 그 비용을 감당할 것인가를 두고 일어난 최악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둔촌주공 사태의 본질은 정부가 ‘가격은 시장에서 정해진다’는 기본 원리를 무시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원희룡 “시장과 연동되게 개선 준비”

사실 이 같은 사태는 문 정부가 2019년 민간택지로 상한제를 확대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가격 통제가 주택 공급을 막아 오히려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서울의 주요 재개발·재건축 사업지가 채산성 악화로 사업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서초구 신반포15차 지구(641가구)와 동대문구 이문1구역(3069가구), 이문3구역(4321가구), 은평구 대조1구역(2451가구)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의 분양 예정 물량은 24개 단지 9734가구였지만, 5월 현재 분양 물량을 포함한 상반기 예정 물량은 17개 단지 2350가구로 쪼그라들었다. 연초 계획 물량 대비 75.9% 줄어든 것이다. 일반분양 물량을 일반적인 ‘선(先)분양’ 방식이 아닌 아파트를 짓고 분양하는 ‘후(後)분양’으로 돌리는 사업지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그나마 분양가를 유리하게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인데, 후분양은 청약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부동산·공간정보연구소장)는 “공공택지와 민간택지는 상황이 다른데 공공택지에 적용하던 상한제를 그대로 민간택지에 적용하니 문제가 된 것”이라며 “정부가 민간 사업의 가격을 통제하는 건 반시장적 제도인 만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민간택지 상한제를 손보기로 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장 움직임에 연동될 수 있도록 개선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투기 수요를 자극할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 덧붙였다. 부동산 시장에선 상한제상 기본형 건축비에 조합원 이주비나 사업비 관련 금융비용, 명도소송 비용 등을 가산비로 인정해주는 식으로 개선안이 나올 것이라 보고 있다. 지금은 이들 비용을 건축비에 넣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도심에서의 주택 공급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개선이 아니라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민간택지 상한제로 이익을 보는 것은 몇몇의 이른바 ‘로또 분양’ 당첨자 뿐”이라며 “장점보다는 주택 공급 방해와 이로 인한 임대차시장 불안 등 단점이 더 큰 만큼 민간택지 상한제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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