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54] 미담의 발견
결혼과 이혼 기사가 동시에 뜬다면 사람들은 어떤 기사를 더 많이 클릭할까. 대개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성공보다 실패, 기쁨보다 슬픔에 더 빨리 반응한다. 기쁨과 칭찬을 느끼는 감각에 비해, 절망과 비난을 감지하는 감각이 더 예민하게 발달해 온 탓이다. 악플에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하는 것도, ‘뒷담화’가 인류 진화의 일면이라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사회 실험’이라는 이름의 몰래카메라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특정 상황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한 동영상이었다. 돈을 못 내는 결식 아동의 밥값을 받기는커녕 아이가 먹을 음식을 따로 챙기는 식당 주인, 자살을 시도하는 청년을 다리에서 끌어내리며 귀한 목숨이라고 울먹이는 여자, 폐지 줍는 노인의 리어카를 대신 끌고 올라가는 고등학생의 영상은 주로 연말에 몰아 읽던 미담 기사를 연상시켰다.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한문철은 운전을 안 한다고 한다. 끔찍한 사고 영상을 매일 접한 뒤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다. 범죄 심리학자 이수정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는 ‘TV 동물농장’이다. 악한 인간들에게 너무 지쳐 동물에게서 위로받는다고 했다. 나도 살인, 폭력, 전쟁 등 원치 않는 내용의 기사를 많이 본 날은 일부러 선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영상들을 찾아본다. 밑에 달린 수많은 선플을 읽기 위해서다.
조선 시대 암행어사는 임무를 마친 후, 서계(書啓)와 별단(別單)을 작성하여 왕에게 보고했다. ‘서계’는 지방 관리의 불법행위에 대한 감찰 기록이다. 흥미로운 건 ‘별단’(문서에 덧붙인 인명부)이다. 암행어사는 지역의 민생을 살피며 그곳의 열녀나 효자를 찾아 보고하는 일도 수행했다. 그만큼 ‘미담의 발굴’은 조선의 기강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일이었다. 정의로운 일을 한 가게의 물건을 팔아주자는 역설적 의미의 신조어 ‘돈쭐’은 그런 의미에서 현대판 별단이다. 만약 돈쭐 리스트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배포하면 어떨까. 선함을 퍼뜨리는 기술의 축적이 시급하다. 악플 속에 단 하나의 선플만 있어도 악플의 효과는 반감된다는 연구가 있다. 좋은 것만 보고 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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