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바보 삼촌의 통장
먹거리로 약으로 쓰임새 다양해
바보 삼촌도 사람 도리 다하고 가
잡초라고 바보라고 얕보면 안 돼
유난히 가문 봄이다. 며칠 전부터 집 앞 개울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흙먼지가 날릴 정도로 가문데도 잡초들은 끈질기게 돋아난다. 오월 초쯤 새벽녘이면 영상 4도까지 내려가는 바람에 고추와 오이 모종이 다 죽었다. 살아야 할 놈들은 죽고 죽어야 할 놈들이 살아 나날이 무성해지는 것을 보니 속이 쌔롬쌔롬하다. 불과 일주일 전 로터리를 쳐 놓은 빈 밭에 벌써 명아주가 파릇파릇 자라고 있다. 기나긴 여름 내내 농부들 속을 태우는 대표적인 잡초다.
삼촌은 품삯을 알뜰히 모아 몇 마지기 논을 샀다. 어찌나 알뜰하게 돈을 챙겼는지 먼 친척은 암만 해도 쟈가 바보가 아닌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덕분에 결혼도 했다. 그렇게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한 번도 본 적 없는 숙모는 몇 년 되지 않아 논문서를 갖고 튀었다. 삼촌은 몇 년간 술독에 빠져 살았다. 숙모는 몰랐을 것이다. 바보라도 외로워할 줄 알고 슬퍼할 줄 알고 좌절할 줄 안다는 것을…. 친척과 동네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 덕분에 삼촌은 오래지 않아 술독에서 빠져나왔다. 늙고 병들기 전까지 삼촌은 그 마을에서 동네 사람들이 핏줄인 양 거둬 준 덕에 그리 힘들지 않게 잘 살았다. 다 그런 줄 알았다. 내 어머니만 아닌 것을 알았다. 어머니만 가면 삼촌이 깊이 숨겨 둔 통장을 건네며 말했단다.
“나 데꼬 가그라. 나 돈도 많다.”
얼마나 피붙이가 그리우면 그랬을까. 자기 몸조차 건사하기 어려웠던 어머니는 삼촌만 만나고 오면 앓아누웠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삼촌이 늘그막에 몸담은 남원 요양원에 다녀왔다. 그때도 어머니는 몇 날 며칠 눈물바람이었다. 그리움이 풀린 탓이었는지 어머니 다녀가고 머지않아 삼촌은 세상을 떠났다.
삼촌 명의 통장에 칠백 남짓한 돈이 있었고, 어머니가 유일한 상속자라 연락이 왔다. 거동 어려운 어머니 대신 내가 요양원에 찾아갔다. 거기 직원에게 삼촌의 말년을 소상하게 들었다. 삼촌은 성정이 깔끔해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요양원 청소를 도맡았다고 한다. 눈이 내리면 제법 떨어진 마을까지 혼자 눈을 다 치웠다. 그게 고마워 마을 어른들이 간혹 삼촌에게 막걸리를 대접했단다. 막걸리 먹고 싶은 날이면 삼촌은 치울 필요도 없는 길을 쓸며 마을에 내려갔다. 직원이 그랬다. 이 요양원에서 삼촌에게 잔소리 듣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왜 청소를 하지 않느냐, 왜 이걸 제자리에 두지 않느냐, 입만 열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이상도 하지, 바보가 되었는데도 성정은 내 어머니와 똑같다. 잔소리가 지겹긴 했지만 누구도 삼촌을 미워하진 않았다고, 직원은 힘주어 말했다. 요양원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고.
바보 삼촌이 남긴 돈으로 삼촌 화장도 하고, 천도재도 지내고, 무엇보다 팔십 년도 전에 세상 떠난 외할머니 문제도 해결했다. 봉분조차 낮아져 무덤인지도 알 수 없는 묘를 파 화장을 해서 선산에 뿌렸다. 바보지만 삼촌은 누구보다 사람 도리를 다했고, 젊어서는 마을의 없어서는 안 될 일꾼이었으며, 병들어서도 요양원의 자청한 청소부였다. 바보라도 쓰일 데가 있다, 잡초가 그렇듯. 별 볼 일 없는 백성을 일컬어 잡초라 한다. 잡초라고 무시하는 자들, 언젠가 큰코다친다. 그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불변의 이치다.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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