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죽음의 악순환에 빠진 도시[책과 삶]
청부 살인자의 성모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 송병선 옮김
민음사 | 212쪽 | 1만3000원
콜롬비아 메데인은 죽는 일과 태어나는 일이 반복되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죽음은 또 다른 죽음을 불러오는 곳이다. 증오와 원한의 도시 메데인에서 ‘마약 카르텔’ 범죄로 비롯된 악순환 중 죽음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게 ‘청부 살인자(시카리오)’다. “위탁받아 살인하는 젊은 청년”이다. 나이가 적으면 열두 살, 많아도 열일곱 살을 넘기지 않는다.
‘페르난도’는 수십년 만에 돌아온 메데인에서 “아무 목적도 없이 죽음으로 가득한 시간과 나날이 연속되는, 미래 없는, 볼품없는 현재”를 공유하는 청부 살인자 알렉시스와 만난 뒤 이들의 삶과 악순환을 촉발한 정치, 사회, 종교 문제를 보며 지독한 현실에 관한 신랄한 고발의 언어를 토해낸다.
운동화 한 켤레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까. 도둑맞은 사람은 그걸 빼앗기는 걸, 훔치는 사람은 운동화를 갖지 못하는 현실을 부당하다고 여긴다. 도둑놈들에게 가장 좋은 게 이 왕국이다. “정부 안에서 도둑질하는 게 가장 좋은데, 그게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야.” 종교는? 어린 청부 살인자들은 죽일 때나 죽을 때 성모를 찾는데, 저명한 신부는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부자는 주님 재산의 관리자다.” 페르난도의 정신을 지배하는 건 죽음의 정서다. “늙음이라는 불명예와 치욕을 모른 채. 극악무도한 단칼이나 자비로운 총알로 젊은 청부 살인자들은 살해될 거야.”
소설의 주된 시간 배경은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1993년 12월 군에 살해당한 이후다. 마약밀매조직 두목에게 고용되지 않은 청부 살인자들이 ‘배관공 임금’보다 싼값에 개인 간 ‘쿨레브라(해묵은 원한)’를 처리해주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페르난도 바예호의 첫 한국어 번역작이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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