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에게 발견되고 싶은 마음보다 중요한 것
자주 보지 않아도 만나면 편한 후배가 있습니다. 이 후배는 저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에요. 그래서인지 글 쓰는 고민을 이야기 하면 제법 통한다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후배와 나눈 많은 이야기 가운데, '어쩜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네' 싶은 게 있었어요. 그건 바로 '발견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후배의 경우는 책 4권을, 저는 책 3권을 썼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글을 썼는지(혹은 쓰고 싶은지) 알려야 하고, 이런 글을 썼다고 보여줘야 하며 또 그들이 검토를 끝낼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 또한 최근 몇 개의 출판사에 원고 투고를 했지만 두 달이 넘도록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깊이 공감하며 대화를 나누었어요.
그러다 후배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그래서 계속 쓸 수밖에 없다고요. 누군가에게 발견되려면 쉬지 않고 계속 쓸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요. 쓰지 않으면 이런 글을 쓰는 나란 사람을 누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입니다. 어쩌면 저 자신에게 더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발견되고 싶은 마음보다 중한 것
마침 수십 권의 책을 펴내고 50만 독자를 사로잡은 베스트셀러 작가 정여울씨의 책 '끝까지 쓰는 용기'를 읽으며 저의 글쓰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 '정여울'이란 작가는 책을 내기 위한 글만 쓰는 건 아니라고 해요. 그 누구에게도 평가 당하지 않는 글이 습작이라면서, 습작을 하면서 글쓰기의 순정함 기쁨을 느낀다고 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습작을 하는 동안에는 아마추어가 되는 자신을 깨닫는 기쁨을 느낀다'라는 문장이었어요.
그 글을 읽으면서 '나의 글쓰기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물었습니다. 발견되고 싶은 마음이 독자를 향해 있는 건지, 출판사와 편집자를 향해 있는 건지 생각해 본 거였어요. 부끄러움이 밀려들었습니다. 이왕 쓰는 거 책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제 안에 있었어요. 자신이 쓴 글로 책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책이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책을 만드는 건 편집자의 몫이지 쓰는 사람이 생각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다닌 것이 참으로 무색하게 말입니다.
부러운 마음도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다음 계약을 걱정하지 않는 작가들을, 혹은 2쇄 3쇄를 아무렇지 않게 찍어내는 작가들을 향한 질투 같은 거요. 그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 겁니다.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프로가 되길 바라고, 이름난 작가가 되길 바라며, 이름 자체로 브랜드가 되고 싶어 할 테니까요. 하지만 부러워하고만 있을 수도 없는 게 작가의 숙명일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계속 쓰기가 어려워 질테니까요. 그럴 때 작가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부러움을 질투의 방향이 아니라, 감탄과 경이의 방향으로 돌리는 게 좋다"라고요. "질투하는 시간보다 감탄하고 존중하고 배우는 시간을 늘리라"고 해요. "멋진 작가들을 보고 기가 죽기보다 기를 쓰고 배우는 것이 낫다"면서요.
실제로 정여울 작가는 자신을 아직도 '습작생'이라고 말하며 매일 쓴다고 해요. '엄청나게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매일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뻐한다'는 글을 읽으며 역시 고수는 다르다 싶었어요. 만족이 없고, 경지가 없고, 글쓰기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게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습니다. 그에게 저도 기를 쓰고 배우고 싶어졌어요.
◇ 긁지 않는 복권이 되지 않으려면
작가는 또 글 쓰는 사람들에게 슬럼프보다 자기혐오나 자기비하를 더 경계할 것을 당부합니다. 저도 그런 말을 자주 하는데요. 그 글은 당신만이 쓸 수 있는 고유한 글이니 귀하게 여기라고요. 이렇게 잘 알면서도, 한번 글태기(글이 안 써지는 시기)가 오고 나면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치들이 왜 한없이 작고 사소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이걸 써서 무얼하나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나의 이야기를 사적인 이야기나 신변잡기로 폄하하는 분위기'에 대해 작가는 말합니다. "나의 이야기를 중시하되 나의 삶을 타인의 삶으로 확장할 수 있는 교집합을 찾으라"고요. 다만,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신세한탄으로 전락하면 안 되기에 나의 이야기가 과연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까를 생각해야 한다"고요. 그러려면 "나혼자 간직하는 게 나은 이야기와 함께 나누면 더 좋은 이야기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라고 작가는 강조합니다.
정여울 작가는 무작정 신이 나서 쓰는 것을 자신의 글쓰기 비결이라고 말해요. 글쓰기에 관해서는 항상 예열되어 있는 상태라고요.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게.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요? 작가는 언제나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래요. 매일 글을 쓰지 않아 작가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저에게, 무작정 쓰기보다 이 글이 책이 될 수 있을지, 얼마나 팔릴지를 먼저 고민하는 저에게 작가의 이런 말들은 저에게 다시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순간으로 돌아가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기꺼이 아마추어가 되는 그 순간의 기쁨을 다시 느껴보라고요.
고마웠습니다. 글쓰기의 기쁨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어서요. 그 신기하리만큼 즐겁고 신났던 기억을, 그 마음을 잠시 잊고 있었어요. 뭣이 중한지도 모르고 '발견되고 싶은 마음' 운운했던 게 후회될 만큼이요. 간절함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어요. 출판사, 편집자를 비롯한 독자들이 작가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요. 정여울 작가는 '내가 나 자신이 되는 글쓰기, 내가 가장 나다운 나로 변신할 수 있는 글쓰기'를 강조하는데요. 그러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어요. "그런 글쓰기를 꿈꾼다면 글을 쓰는 모든 순간, 내가 나의 독자를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쓰는 모든 문장이 한 명 한 명 나의 독자를 결정하는 행위라는 것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작가는 귀띔합니다.
'나다운 내가 될 때, 내가 쓰는 문장이 독자를 결정한다'라는 말이 좋아 여러 번 읽어보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가득 충전 되었어요. 계속 끝까지 써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글 쓰고 책 내는 작가가 글쓰기에 도움 되는 책을 소개하고자, '쓰라고 보는 책'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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