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칸영화제] 칸 홀린 아이유.."세밀한 가족 초상화" 12분간 기립박수

김유태 2022. 5. 2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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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경쟁부문 '브로커' 공식 상영
26일(현지시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영화 `브로커` 상영을 앞두고 배우 강동원·이주영·이지은(아이유)·송강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왼쪽부터)이 외신 기자에게 둘러싸여 있다. [AP = 연합뉴스]
생을 부정당한 사람들이 있다. 태어나면서 존재 지위를 박탈당한 사람들. 현실의 함수로부터 어긋난 뒤에도 포기할 순 없어 삶은 살아지지만 생의 좌표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우리의 일부인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일은 때로 숭고한 의무, 숙명적인 필요로 다가오곤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이자, 송강호·배두나·이지은(아이유)·이주영이 열연한 한국영화 '브로커'가 26일(현지시간) 칸영화제에서 처음 얼굴을 드러냈다. 젊어서는 TV 다큐멘터리를 예술 장르로 끌어올린 연출가였고, 이제 영화계 거장으로 꼽히는 고레에다 감독의 신작이다. 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에 이어 고레에다 감독이 이번 작품으로 생애 두 번째 황금종려상이란 전무후무한 트로피를 거머쥘지 기대를 모은다.
폭우가 내리던 골목길, 소영(이지은)의 핏기 없는 얼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영은 '주님의 아이들을 놓고 가시라'는 부산가족교회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사라진다. 극빈한 세탁소 사장이지만 이날만큼은 목회자 가운을 입은 인신매매범 상현(송강호)과 그를 따르는 동수(강동원)는 소영의 아기가 놓이던 시간의 폐쇄회로TV(CCTV)부터 싹 지운다.

아기는 증발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소영이 아기를 되찾겠다며 다시 온다. 악바리 같은 소영의 추궁에, 동수는 버린 자는 말이 없어야 한다고 대꾸하다 그에게 입양의 당위성을 차분히 설득한다. 이후 소영은 아기 우성의 양부모를 중개하겠다는 두 남자의 대책 없는 여정에 함께한다. 중개수수료는 '반반'이다.

불법 입양의 세계는 경악스럽다. 남아는 1000만원, 여아는 800만원. 한 막돼먹은 부부는 아기 외모를 이유로 '값'을 흥정하다 카드 결제 따위를 운운한다. "찾으러 오겠다"는 부모 쪽지에 희망을 걸고 입양 제의를 부지런히 거절한 아이들, 정이라도 들까 무서워 아기를 잘 돌보지 않던 미혼모들. 상현·동수·소영의 새 부모 찾기 프로젝트는 부산에서 서울로, 또 인천으로 이어지며 '가족이란 무엇인가'란 근원적 질문을 스크린에 전시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어느 가족'에서 보여줬던 화두인 대안가족 모티프가 이번 영화에서도 이어지는 점은 명확하다. 고레에다 감독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집 밖으로 나간' 홈드라마다.

'어느 가족'에서 인물들이 한집에 모여든 이유가 다름 아닌 자본, 즉 '먹고사니즘'으로 대변되는 궁핍 때문이었다면 이번 영화 '브로커'는 인물의 구심점이 신생아, 즉 생명 자체다. '브로커'의 모든 캐릭터는 아기에게 불운했던 자신의 옛일을 투사하며 자신의 삶을 긍정할 마법 같은 힘을 얻는다. 예상 가능한 신파와 통속일지라도, 부정할 수 없는 얘기란 점은 명징하다.

피도 없고 섹스도 없는 부드러운 장면 속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은 거대한 은유의 박물관 같다. 소영이 서울행 KTX에서 속엣말을 꺼내는 장면, 한 번도 긍정받지 못한 삶을 서로 위로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매력을 설명한다. 보육원 대표인 친구가 부는 호루라기, 차 트렁크를 잠그는 주황색 빨랫줄, 아기 우성의 희미한 눈썹,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세차장 비눗물, 무엇보다 왜 상현의 직업이 세탁소 사장인지도 곱씹어보는 재미가 있다. 송강호가 열연한 상현은 일종의 남성화된 할머니로서, 옷감을 바느질하는 그는 '어느 가족'의 하쓰에 할머니를 연상시킨다.

영화 `브로커` 한 장면. [사진 제공 = CJ ENM]
진부한 은유와 과한 설정이 없지는 않다. 상현이 아기를 위해 더 큰 범죄를 감행한다는 점, 상현의 인신매매 동기가 완전한 선의도, 완전한 악의도 아니라는 모호한 설정도 호평에 제약적이다.

이 때문인지 외신 반응은 양극단의 스펙트럼을 형성했다. "가장 인간적인 결론까지 따라가게 만든다"(미국 버라이어티), "선택된 가족에 대한 세밀한 초상화"(뉴욕타임스) 등 호평 이면에서 "영화는 브로커들을 그저 사랑스럽고 결점 있는 남자로 묘사한다"(영국 가디언)는 비판까지 나왔다. 다만 고레에다 감독과 배우들은 상영 직후 현장에서 12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을 연출하면서 제 안에 답을 가지고, 목적의식을 갖고 찍지는 않는다"며 "한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버려졌고 어떤 감정을 갖게 됐는지를 그들의 여행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여행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고 또 발견하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발견의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영화의 힘"이라고 말했다. 고레에다 감독이 2016년 자서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서 말한 '바라보고 보여주기' '재현과 생성'에 대한 화두가 이번 영화에서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브로커` 상영 직후 칸영화제 뤼미에르 대극장 모습. 이날 `브로커` 레드카펫 행사는 팬사인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이지은에 대한 팬들 환호와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김유태 기자]
이날 뤼미에르 대극장의 빛나는 히로인은 명실상부 배우 이지은이었다. 이지은은 레드 카펫에 등장하자마자 상당한 환호를 받았고 외신 카메라가 집중됐다. 해외 팬들은 본행사장인 펠레 데 페스티벌 앞에 두 시간 전부터 몰려들어 "아이유"를 연호했고, 이지은은 도착 후 팬들에게 먼저 다가가 일일이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 포착됐다. 칸영화제 조직위원회 측도 그에 대한 영상을 뤼미에르 대극장 화면에 실시간으로 송출하며 관심을 드러냈다.

감독은 일본인이지만 영화 '브로커'의 국적은 100% 한국이다. 자본·제작진·배우가 모두 한국인이어서다. 올해 칸영화제 최종 심사 결과는 28일(현지시간) 저녁 발표된다.

[칸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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