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비명을 집어삼키는 '침묵 공장'..모두가 '침묵'했던 아동성폭력 이야기 [책과 삶]

이영경 기자 2022. 5. 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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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아동의 비명을 집어삼키는 침묵 공장.

<침묵 공장>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성폭력 가운데서도 가장 끔찍한 아동 성폭력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글을 쓴 테아 로즈망은 아동성폭력 피해자였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이자 수많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동 성폭력은 입을 열어야만 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여러 출판사를 두드렸지만 중간에 계획이 엎어져 원고를 몇달간 서랍 속에 묵혀두기도 했다. 하지만 노력 끝에 그의 이야기는 그래픽 노블로 모두와 만나게 됐다. 책은 2022년 앙굴렘 국제 만화축제 청소년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다.

<침묵 공장>은 우화적인 방법으로 아동성폭력을 다룬다. 가상의 한 섬에는 오래된 ‘침묵 공장’이 있다. 침묵 공장은 아이들의 비명을 집어삼켜버린다. 그래서 성폭력을 당한 아이들의 비명과 고통을 어른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쌍둥이 남매 아르튀르와 오필리아는 둘 다 성폭력 피해자다. 부모의 이혼으로 각각 아빠와 엄마랑 따로 살게 된 이들은, 부모의 방치와 무관심 아래 성폭력을 당한다. 이들의 고통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아르튀르는 몸에서 ‘증호’라는 이름의 가시가 자라나고, 오필리아는 ‘창퓌’라는 수치심으로 몸이 점점 줄어든다. 침묵 공장이 삼켜버리는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마리아 선생님이다. 아동성폭력 피해자인 마리아는 충격과 고통으로 자가면역질환에 걸려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침묵 공장>의 한 장면.



마리아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침묵공장을 폭파시키고, 아이들의 비명 소리를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된다. 가해자들은 빨간색, 피해자들은 파란색으로 변하는데, 이들 중엔 보라색인 자들도 있다. 자신이 어린시절 피해자였다가 자라서 가해자가 된 이들. 아르튀르의 가해자 역시 보라색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침묵 대신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모두의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한다.

상드린 르벨의 그림은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아이들의 성폭력을 당하는 장면은 우화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아이들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는 그림은 가슴 아프면서도 성폭력 피해자들의 자신의 몸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것을 잘 표현한다.

<침묵 공장>의 한 장면



프랑스의 아동 성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매년 소녀 13만명, 소년 3만5000명이 성폭력을 당하며, 가해자는 대부분 가족이나 친인척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강제추행 피해자 중 12세 미만이 46%이고, 피해자 중 88%가 여성이다.

한국에서도 ‘미투’ 운동의 결과로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처벌도 강화되고 있지만 아직 ‘침묵’ 안에 머물고 있는 아동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더 많을 것이다. 우리 안의 ‘침묵 공장’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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