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파리바게뜨 그 빵을 먹지 마오"

2022. 5. 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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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바람] 존엄과 평등의 빵을 새롭게 반죽하자

[안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넘쳐나는 말과 사건 속에서 인권의 가치를 벼리기 위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들의 고민을 <프레시안>에 연재합니다. 우리의 말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여는 싹이 되고, 인권 감수성을 돋우는 생각의 밭이 되기를 바랍니다.

▲임종린 화섬노조 SPC 파리바게뜨지회장. ⓒ프레시안(한예섭)

"결단의 횃불은 이제 타오르기 시작했다." - 단식일기 1화

SPC 파리바게뜨지회 임종린 지회장이 단식 투쟁에 돌입하고 SNS를 통해 본 단식일기의 첫 말이다. 그녀가 들어 올린 결단은 무엇이기에 제빵사가 밥을 굶어가며 횃불을 들려 했을까. 자신의 건강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 무엇이었나.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만든 노조를 회사 SPC가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힘은 인원수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탈퇴하면 노조가 그동안 보호했던 권리를 지킬 수 없게 될 수 있다. 지금도 화장실을 못 가고 휴일도 없다. 안타깝게도 단식은 53일째 동료와 시민들의 만류로 중단했다. 단식 중단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한 문장을 말하기 힘들어하면서도 살아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하는 모습에서 내 목구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듯 강렬했다.

우리가 먹는 '빵'

단식 중단 기자회견을 보면 우리가 먹는 빵은 무엇이었나 생각해본다. 연중무휴 동네빵집으로 자리 잡은 파리바게뜨에서 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생각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빵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동안 회사는 제빵사들의 노동권을 박탈해갔다. 그들의 건강권과 휴식권은 바닥이었다.

"점심시간 1시간은 당연히 밥 먹고 쉴 수 있어야 하고, 아프면 당연히 쉬고, 가족이 상을 당하면 당연히 가볼 수 있어야 하고, 일했으면 당연히 그만큼 급여를 받고, 임신했으면 당연히 모성보호를 받고, 당연히 연차·보건 휴가를 쓰고, 열심히 일하면 당연히 공정하게 진급하고, 다치면 당연히 산재 처리하고, 약속하면 당연히 지키고 …." - 3월 28일 임종린 지회장 단식 돌입 기자회견 발언 중

특히 파리바게뜨 제빵사의 80%가 여성 청년 노동자이다. 2022년 3월 자 SPC삼립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SPC 사무·점포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성별 임금 격차는 44.3%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 노동자에게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월경 휴가와 출산·육아 휴직이 보장되지 않고 있었다. 2018년 8월 일과 건강이 파리바게뜨 제빵사 543명을 대상으로 근무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80.7%가 아파도 출근했고, 2017년 한 해 동안 임신한 적이 있는 제빵사 14명 중 7명이 자연유산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실했던 '노조 할 권리'가 무너지는 시간들

이렇게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제빵사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노조는 너무나 절실했다. 임종린 지회장은 처음부터 노조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상담받으면서 파리바게뜨 제빵사들을 SPC가 불법파견으로 고용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고용노동부는 불법파견으로 판단하고 회사에 직접고용을 명령했다. 시민들도 청년들이 많은 제빵사를 직접 고용하라는 여론이 좋았다.

그러나 2018년 SPC는 제빵기사를 직접고용 하는 대신 자회사인 피비파트너즈로 고용하고, 임금을 3년 안에 본사 정규직 수준으로 맞추는 사회적 합의로 마무리됐다. 자회사라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회사는 사회적 합의 덕에 불법파견에 따른 벌금 수억 원을 물지 않아도 됐다. 꼼수였던 것일까.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 화학섬유 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파리바게뜨지회)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4년 전 사회적 합의는 이행되지 않은 상태이다. 회사는 이행했다고 말하지만, 합의의 주체인 지회와 한 번도 교섭이나 논의를 한 적이 없다. 단식 30일이 넘어서야 내용 없는 교섭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SPC 파리바게뜨 노조 집회. ⓒ프레시안(한예섭)

한편 700여 명이 있던 파리바게뜨지회는 200여 명으로 쪼그라들 정도로 탄압받았다. SPC그룹은 협력업체 중간관리자 중심의 노조를 통해 육아휴직 중인 지회 조합원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하고, 승진에 차별을 두며 노조를 와해시키려고 했다. 노조 탄압에 맞서 천막농성을 1년이나 했으나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도 회사의 노조 탈퇴 작업을 부당노동행위라고 했으나 회사는 부정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요구되는 빵과 장미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 114년 전의 뉴욕의 여성 노동자가 겹친다. 1908년 세계 여성의 날이 토대가 된 투쟁 구호는 "빵과 장미를 달라"졌다. 노동권을 포함한 생존권이 빵이라면, 장미는 참정권 보장을 통한 존엄한 시민권 인정이다. 정치적 권리 없이 임금인상만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빵과 장미는 떨어질 수 없다.

지금 한국에서 모든 노동자에게 선거에 참여하는 참정권은 있지만 일터에서 노조 할 권리는 시민의 권리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제빵사들의 휴식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노조 할 권리는 절실하다. 여전히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는 꽃피지도 않았다.

비정규직의 노조조직률은 여전히 정규직에 비해 낮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노조조직률은 늘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분석(2021년 8월 조사)에 따르면 정규직은 1만 명, 비정규직은 53만 명 증가한 것은 코로나 위기로 확대된 불확실성 때문이다. 사회 전반적인 노조 가입 증가와 달리 파리바게뜨지회의 노조 탈퇴가 늘어난 것은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코로나19 동안 노조가 없어도 될 만큼 파리바게뜨의 노동조건이 좋았던 것일까. 아니다. 코로나19 초기에 마스크조차 지급하지 않을 정도였다. 위에 언급한 관리자들의 회유와 탄압을 몰라도 회사의 압력을 유추할 수 있다.

새로운 빵 반죽이 필요한 때

단식 53일을 하면서까지 지켜야 했던 노동조합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임종린 지회장은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노동조합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임종린 지회장이 단식하는 동안 열린 문화제에서 받은 배지를 보며 생각했다. 배지에는 '혼자가 아닌 우리'라고 적혀있었다. 그들의 노동권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노조 할 권리는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에게만 존엄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내 옆의 동료 시민의 노동권이 박탈되었는데 마냥 즐거울 수가 없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 인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 먹는 빵보다는 함께 먹는 빵을, 착취로 만들어진 빵보다는 존중받으면서 만들어진 빵을 먹고 싶다.

존엄한 '빵'을 쟁취하기 위해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모이고 연대하는 동료시민들이 불매운동으로 모이고 있다. 불매운동은 시민들을 노동자와 소비자로 분리하며 배를 불려왔던 기업주들에게 우리는 서로 연결된 동료시민임을 선포하고 경고하는 일이다. 파리바게뜨 노동자와 연대하는 것은 '혼자가 아닌 우리'로 모여 불평등한 일터를 무너트리는 힘이다. 이제 함께 SPC 빵을 거부하자! 존엄과 평등의 빵을 새롭게 반죽하자!

[안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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