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참이 미덕'이었는데..결혼식·돌잔치에 '부담백배'
미뤘던 행사 쏟아져 경제적·시간적 부담 호소
5060 "상호부조·품앗이", 2030 "의무방어냐"
직장인 조아무개(35)씨는 최근 6월 첫째 주 주말에 열리는 5촌 조카 돌잔치 참석 여부를 놓고 부모님과 언쟁을 벌였다. 부모님은 5촌(사촌 동생의 딸)은 매우 가까운 관계니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조씨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씨는 “현충일을 낀 3일 연휴라 여행계획을 잡아놨는데, 돌잔치를 열어 친척들을 죄다 불러모으는 것은 민폐가 아닌가 싶다”며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소규모 가족 단위 행사가 정착되나 싶었는데, 일상회복이 되자마자 밀려드는 행사에 금전적·시간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부모님 세대에는 5촌이 가까운 사이였겠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며 “돌잔치 정도는 직계가족끼리 조용히 치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길었던 코로나19 대유행 사태가 끝나고 일상회복 분위기가 확산하자 미뤄뒀던 각종 행사가 밀려들고 있다. 2년 넘는 기간 다수가 모이는 행사가 제한되다 보니 스몰웨딩과 엄마표 돌잔치가 유행하는 등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는가 싶었지만, 결국 ‘코로나도 뿌리 깊은 대한민국의 관혼상제 문화를 바꾸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혼인 김영진(34)씨는 다음 달 청첩장만 6장을 받아들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씨는 “대학 동기, 직장 동료, 친척까지 미뤘던 결혼식을 한다며 줄줄이 청첩장을 보내는데, 축의금을 5~10만원씩만 내도 허리가 휠 지경”이라며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무시할 수도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호텔·예식 업계에서는 “결혼 비수기가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상반기 예식장 예약률이 치솟고 있다. 롯데호텔 서울·웨스틴 조선 서울 등 주요 호텔은 이미 올 봄·가을은 물론 내년 봄까지 주요 시간대 결혼식 예약이 대부분 마감됐다.
하지만 ‘결혼식 참석 여부’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인식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지난달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남성의 52.7%, 여성의 64%는 ‘청첩장을 받는다고 모두 참석하지는 않는다’고 응답했다. 또 결혼식 청첩장을 받을 때 여성의 66%, 남성의 48%는 ‘부담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부담의 이유 중 ‘경제적 부담’을 꼽은 응답도 남성은 22.7%, 여성은 16.7%로 각각 2위에 꼽혔다.
경조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세대 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5060세대는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전통적인 품앗이 문화’로 받아들이지만, 2030세대는 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비혼주의자를 자처하는 이서린(29)씨는 “부모님 세대엔 애경사를 상호부조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비혼주의자와 딩크족이 늘어나는 요즘 세대에겐 통하지 않는 문화”라며 “뿌린 돈을 회수하기 위해 청첩장을 수백장 찍어서 돌리는 것이 정말 전통문화인지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차라리 축의금·조의금을 송금하고 시간이라도 절약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아무개(36)씨는 “요즘은 카카오톡 송금 시스템 등이 있어 계좌번호를 몰라도 축의금·조의금을 전달할 수 있는데, 마치 ‘의무방어전’을 치르듯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가족끼리 치러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이미 증명됐는데, 코로나가 잦아들자마자 이런 깨달음이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이런 논란 자체가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발로라는 반론도 나온다. 유덕기(59)씨는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문화는 일종의 공동체주의의 바탕이기도 한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너무 개인주의적”이라며 “형제가 없는 외동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물질적·심리적으로 서로를 돌보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미덕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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