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합니다[은유의 책 편지]

은유 작가 2022. 5. 2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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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캐럴라인 냅 지음·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400쪽 | 1만8000원

얼굴 아래 작은 얼굴. 언뜻 성모마리아상의 평온함이 스칩니다. 그런데 현실 엄마의 낯빛은 아이가 뒤척일 때마다 어둡게 졸아듭니다. 사정을 모르는 아기의 몽글몽글한 살냄새는 모니터 바깥으로 태평하게 새어나오죠. 아기가 있는 줌 수업 풍경. 귀엽고 슬프고 좋아서 저는 자주 울 것 같았는데요. 집에서 할 수 있어서 도전한다는 엄마 학인이 이번에도 셋이나 있었습니다.

“아이가 깨서 젖 먹이고 켤게요.” 화면이 꺼집니다. “똥 치우고 왔어요.” 대화창에 메시지가 뜹니다. 젖먹이는 품에 안겨라도 있지만, 세 살배기는 화면에 난입하고 목에 매달리네요. 수업 전에 만화를 켜놓고 간식을 주어도 그새 지루해진 아이가 엄마에게 달라붙는 거죠. 한번은 ‘치카치카’를 하는 아이의 앙증맞은 입모양이 잠시 노출되어 줌 화면에 웃음이 번지기도 했죠. ‘우리동네 구자명 씨’라는 고정희

시인의 여성사 연구 연작시처럼 기록으로 남겨두고픈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대는 ‘글쓰기 줌수업의 사랑눈씨’였지요. 저녁 7시 반부터 10시까지 비디오 끄기와 켜기, 음소거와 해제 버튼을 누르며 수업에 방해가 될까 노심초사 수업을 듣던 중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요. 다른 분들에게 미안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저는 날아오는 공을 받아치듯 말했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다.” 용케도 시간은 흘렀고 히말라야 12좌 등정처럼 가팔랐던 12주 수업을 마치는 날, 그대는 저 말로 버텼다며 다른 분투하는 엄마에게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 서로에게 용기가 된다는 게 이런 거로구나!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저도 ‘이렇게까지’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릅니다. 그냥 ‘해야 한다’는 직감만 따를 뿐이죠. 우리는 알아서 행하기도 하지만 행하고 나서야 왜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되기도 하잖아요. 저도 나중에야 알았어요. 비록 손에 쥔 건 앙상한 글 몇 편일지라도 그 애씀이 나를 변화시켰구나. 주부에서 작가로 직업이 달라진 게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변화죠. 욕구하면 안 되는 사람에서 욕구해도 되는 사람으로. ‘욕구에 대한 욕구’를 스스로 허용하게 된 겁니다.

욕구란 세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캐럴라인 냅은 <욕구들>에서 정의해요. 그런데 이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여자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먹지 마, 커지지 마, 멀리가지 마, 많이 원하지 마” 너무 익숙한 명령이죠. 그대가 다이어트 실패기를 두 페이지나 되는 글로 썼던 것처럼, 먹지 말아야 하고, 그대가 전문직이지만 직업적 야망을 갖지 않는 것처럼, 남자보다 잘나가도 안 되고, 그대가 수업 하나 들으면서 죄의식에 시달리는 것처럼, 나의 필요는 가족의 필요를 위해 포기해야 하고….

이렇게 ‘하지 마의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에 최초의 욕구가 발동했을 때 잘하는 법을 고민하기도 전에 내가 이걸 해도 되는 사람인가 자기 의심과 싸우게 됩니다. 캐럴라인 냅이 떠올리는 자기 어머니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어요. “애초에 자신에게 욕망하고 원할 권리가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자신의 필요들을 부끄럽게 여기며, 심지어 그 필요들을 거의 인정조차 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를 상상하게 된다.”

저 ‘젊은 여자’는 내가 너무 유난인가 싶어 주저앉길 반복하던 저이기도 하고, ‘그냥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동화책이나 읽어주고 같이 보내면 될 걸. 이렇게 화를 내고 속상해하면서까지 수업을 들어야 할까? 남편 말대로 나중에 애들 크고 할까?’ 되뇌는 그대이기도 합니다. 맞아요. 만국의 엄마들이 “조용하지만 끈질긴 불안, 모기의 잉잉거림처럼 성가신 내면화된 경고”에 시달리고 있네요. 존재에 가해진 금기와 제약이 ‘이렇게까지’ 완강하기에 그걸 넘어서려고 하다보면 이렇게까지 힘겨운 겁니다.

그대가 드디어 오프라인 수업에 나온 날. 아이들의 방해 없이 엄청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는 경험이 너무 오랜만이라며 울먹였습니다. 또 집에 있는 아이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생각보다 걱정되지 않았다며 웃었습니다. 간난쟁이 떼어놓고 나온 김라임씨도, 김지현씨도 해방의 소회를 밝힐 때 삐져나오는 눈물과 웃음을 어쩌지 못했죠. 자신의 욕망이 타당하다는 걸 몸은 느끼는 듯 합니다.

<욕구들>의 저자인 딸도 묻습니다. “어머니가 결코 갖지 못했던 것을 어떻게 나 자신에게 허용할 수 있어?” ‘하지 마’의 세계에서 엄마를 구원하는 멋진 문장이죠. 사랑눈씨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아이들에게 ‘나중에’라는 시간은 도래하지 않으며 원하는 바에 따라 행동해도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증여이고 ‘원함에 관해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다는 점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에 비해 모자람 없는 어머니의 일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은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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