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대법원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배태호 2022. 5. 2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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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야기다.

50대에 접어든 선배와 그 보다 연세가 몇 살 많은 금융권 관계자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그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일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선배와 금융권 관계자는 연거푸 소주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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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배태호 기자] 몇 년 전 이야기다. 50대에 접어든 선배와 그 보다 연세가 몇 살 많은 금융권 관계자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막내였던 터라 감히 두 분(?) 대화에 끼어들지는 못하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선배와 막역한 사이였던 금융권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를 앞두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다며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임금피크제 대상이 되면 한직으로 밀려나 후배 보기 민망하고 방해만 될 것 같다며, 차라리 후배들이 더 일을 잘할 수 있게 스스로 떠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란 것이었다.

지금까지 일했던 날만큼 더 일할 수 있지만, 능력은 물론 건강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스스로 일터에서 나가야 할지 망설이는 금융권 관계자 표정은 외환위기(IMF) 당시 구조조정으로 인해 회사에서 내몰린 나와 내 친구 아버지의 그날 얼굴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청년 취업을 늘리기 위해 이른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어렵사리 마련하고 시행한 '임금피크제'는 이날 안줏거리조차 안됐다.

그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일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선배와 금융권 관계자는 연거푸 소주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데스크칼럼, 데스크 칼럼 [사진=조은수 기자]

대의명분(大義名分)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대의란 원대한 목표를 지닌 큰 뜻을 말하기도 하고,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하지만 때로는 '대의명분'이라는 말이 '집단'의 가치를 '개인'의 가치보다 우선하며, 누군가의 양보나 희생을 강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임금피크제가 대표적인 예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의미 있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내 한 연구기관을 상대로 퇴직자가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 급여를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26일 판결했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해당 사건이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현행 고령자 고용법(4조4)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노사 간 합의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하더라도, 단순히 나이를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노동계에서는 이날 대법원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현행 임금피크제가 명백한 차별이라며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냈다.

반면 경영계는 "(이번 판결이) 임금피크제 본질과 법의 취지 및 산업계에 미칠 영향 등을 도외시한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이와 함께 판결을 분석해 대응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대의명분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기도 있었다. 또,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사회적 대타협'이란 이름으로 '임금피크제'는 시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개인의 가치가 강조되면서, 이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 대법원판결도 그런 측면에서 고민해야 한다. 법원이 제시한 가이드 라인을 살피되, 사회 변화로 인해 희생하고 양보해야 하는 이들도 돌아봐야 한다.

IMF 당시 문이 잠김 회사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아버지들 모습은 불과 10여년이 지나 스스로 일터를 떠나는 삼촌들 모습으로 달라졌다.

앞으로 10여년 뒤 누군가의 형이나 누나, 오빠나 언니가 그런 상황에 처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10여년 뒤에는 그 모습이 현재 청년의 오늘이 될 수도 있다. 과연 그때는 어떤 대의명분으로 양보와 희생을 강요받을까?

이번 판결을 통해 우리는 다른 내일을 준비하고,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대의명분을 고민해야 한다. 어렵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대법원이 쏘아 올린 작은공이다.

/배태호 기자(bt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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