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조동진에서 BTS까지 이어져 있네..길고 긴 한국대중음악의 끈
영동·신촌·이태원 등 장소 중심 해설
아티스트간 소통과 연결지점 찾아내
한국 팝의 고고학 1980: 욕망의 장소
한국 팝의 고고학 1990: 상상과 우상
신현준·최지선·김학선 지음 I 을유문화사 I 각 권 3만2000원
한국 대중음악서 가운데 중요한 책 중 하나인 <한국 팝의 고고학> 3, 4권이 나왔다. 2005년 1, 2권이 나온 뒤 무려 17년 만이다. 저자와 독자의 예상을 훌쩍 넘은 지각 도착의 이유는 방대한 자료 수집 과정의 어려움 등 실무적 이유도 있었지만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각도에서 난관에 봉착했었다는 걸 기획자이자 공동집필자인 신현준(성공회대 교수)이 서문에서 밝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중음악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그리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는 그것만 가지고는 무언가 부족했다.”
저자들이 이번 책에 도입한 각도는 ‘장소’다. 여의도, 영동, 광화문, 신촌, 대학로, 방배동, 이태원 등 1980년대를 다룬 3권은 10개의 장마다 특정 장소를 키워드로 삼았고, 4권(1990년대)에서는 압구정과 홍대 문화를 다룬다.
2권(1970년대)에서도 묵직하게 한자리를 차지했던 조용필이 3권의 문을 연다. 대마초 사건으로 공백기를 가졌다 80년대 초 화려하게 복귀한 조용필의 장소는 여의도다. 그의 빛나는 기량을 전국으로 송출해 국민적 신드롬을 일으키는 데는 당시 여의도 방송국들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976년 <한국방송>(KBS)이 여의도로 이사 온 뒤 1980년 이곳에 진입한 <동양방송>(TBC)은 같은 해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으로 한국방송에 통합됐다. 언론 자유의 말살이었지만 예능에서는 이전에 없던 ‘빅 쇼’ 제작 환경이 조성된다. 80년대 전반기 음악 쇼 프로그램의 정점이었던 한국방송 <100분쇼>를 만들었던 진필홍 피디는 “티비시 통합에 따라 생긴 풍부한 시설과 인력, 전속 악단, 무용단, 합창단을 활용할 수 있는 공영방송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화려하고 실험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당시 조용필이 항상 “대미를 장식하듯 칭칭 감긴 마이크 줄을 서서히 풀면서 무대 앞으로 나와 노래 부르는 모습은 1980년 초중반의 진경이었다.”
장소성이라는 면에서 특히 흥미로운 건 강남 지역, 3권에서 두 장을 할애하는 영동 유흥가와 방배동 카페골목이다. 1960년대 미군부대의 향락과 70년대 대마초 파동, 80년 언론통폐합까지 한국 대중문화의 굽이굽이에서 큰 영향을 미친 ‘관제’는 80년대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강남 지역에 음악이 꽃피고 시드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강남’보다 ‘영동’(영등포 동쪽)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이던 70년대에 정부는 인구 분산 정책의 일환으로 서울 변두리 영동 개발에 나섰다. 1975년부터는 강북 지역에 유흥업소를 포함한 식품 접객업소의 신규 허가를 엄격히 금지하면서 나이트클럽부터 카바레, 룸살롱 등 온갖 유흥업소가 강남구 신사동 일대로 대거 이동하게 된다. 1982년에는 야간통행금지까지 해제돼 이 동네를 불야성으로 만들었다. 강북의 직장인들은 퇴근 뒤 “제3한강교 위의 대탈출” “영동에의 엑소더스”를 감행했고 이는 ‘비 내리는 영동교’(주현미) ‘영동 부르스’(나훈아, 김연자) 등 제목에 ‘영동’이 들어가는 트로트곡들이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됐다. 당시 영동/강남은 성인음악의 소비 장소만이 아니라 생산기지 역할도 했다. 박춘석, 송재리, 길옥윤, 최봉호 등 거물들이 합세해 1981년 세운 태양음향을 비롯해 한국음반, 현대음향 등이 줄줄이 강남에 둥지를 틀었다.
방배동 카페골목은 80년대 중반 이후 ‘강남 2번지’로 부상했다. 하지만 발전 양상은 신사동 유흥가와 사뭇 다르다. “신사동이 성인 유흥업소에 드나드는 직장인들이 흥청거리는 장소로 바뀌는 동안 방배동은 젊은 부유층을 위한 작은 카페가 넘쳐나는 장소로 바뀐 것이다.” 부유층뿐 아니라 연예인, 방송인, 재외교포 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이곳에서 ‘죽때리며’ 국외의 다양한 음악을 수혈받은 젊은 음악인들은 성인가요의 전통 문법에서 벗어난 발라드를 만들기 시작한다. 조덕배, 김종찬, 지예, 최호섭, 하광훈, 박주연 등 80년대를 대표하는 발라드 창작자들이 ‘방배동 사단’의 주요 멤버들이었다. 하지만 방배동 카페골목 역시 1990년 ‘불법 심야 영업’ 규제로 된서리를 맞으면서 “쓸쓸하던 그 골목”(조덕배 ‘나의 옛날이야기’)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밖에도 엄인호, 한영애, 김현식 등의 걸출한 음악인들이 활동했던 신촌의 소극장 문화와 “음악깨나 듣는 남고생”의 가슴을 불살랐던 헤비메탈 밴드들의 종로 ‘파고다 예술관’ 동맹, 90년대를 뒤덮은 댄스뮤직의 발원지가 된 이태원 클럽 연대기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장소성이 부각되지는 않지만 김민기와 노래를찾는사람들로 대변되는 80년대 민중가요와 조동진, 들국화, 90년대 김현철까지 이어지는 동아기획과 하나음악의 성장 등도 당시의 자료와 인터뷰를 중심으로 충실하게 기록됐다.
이 책이 꼼꼼하고 방대한 기록으로서의 가치 이상을 해내는 이유 중 하나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작동해온 대중음악의 장르와 인물들 사이에서 연결점을 찾아낸다는 데에 있다. 한 예로 4권 중 ‘조동진과 방탄소년단의 ‘시’와 ‘세계관’’을 보면 조동진, 사랑과평화 출신으로 김현식부터 유앤미블루까지 1980~90년대 앞서가는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제작한 조동진의 음악적 동료 송홍섭, 조동진의 하나음악 중추였던 최성원이 기획한 <우리노래전시회 4>에 참여했고 90년대 대중음악을 움직여온 김형석, 김형석으로부터 배운 박진영과 박진영 사단에서 성장한 방시혁으로 이어지는 음악적 소통의 연대기가 드러난다. 방탄소년단이 조동진으로부터 영향받았다고 단정하기는 무리지만 언더그라운드 또는 인디음악이든 상업성의 첨단에 있는 음악이든 창작자들의 열정에 기반한 소통과 협업으로 한국 대중음악이 지금의 자리에 도착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각각 60년대와 70년대를 다뤘던 1, 2권은 한길아트에서 나왔던 초판의 개정·증보판이 출판사를 옮겨 3, 4권과 나란히 새 표지를 입고 나왔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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