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신드롬 뒤에는.. 선배들의 뜨거운 40년 열정이
한국 팝의 고고학│신현준, 최지선 , 김학선 지음│을유문화사
풍부한 자료와 생생한 인터뷰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연대별 4권 2436쪽 분량 담아
가수·노래·작곡가·기획자 등
다층 접근으로 한눈에 갈무리
‘한국 팝의 고고학’은 현대 한국 팝의 흐름을 한눈에 갈무리한 역작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대중음악 비평과 연구를 이끌어 온 저자들은 서양 팝의 충격으로 생겨난 한국 팝이 어떻게 독자적 정체성을 획득했는지를 풍부한 자료와 생생한 인터뷰, 엄정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평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스무 해 넘게 한국 팝의 실체를 추적해 온 기나긴 발굴 작업의 성과를 이 책은 ‘탄생과 혁명’ ‘절정과 분화’ ‘욕망의 장소’ ‘상상과 우상’ 등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연대별로 나누어 4권 2436쪽에 걸쳐 소개한다. 가수와 노래뿐 아니라 작곡가, 기획자, 음반사, 연주자, 공연장 등이 포괄된 다층적 접근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특히 한국 팝을 개척한 손석우·김대환에서 시작해 신중현·김민기·조용필·전인권·주현미·김완선 등을 거쳐 신해철·이적·자우림까지 이어진 거장들의 인터뷰는 갈수록 가치가 빛날 것이다.
제목이 익숙한 독자도 있을 수 있다. 2005년 앞의 두 권이 나왔고, 이번에 개정·증보 작업과 함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다룬 두 권을 덧붙여 출간했기 때문이다. 그사이 절판된 초판은 중고서점에서 가격이 최고 15만 원에 이르는 등 희귀본으로 변하기도 했다. 고고학이란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일관된 흐름을 드러내려 하기보다 사실들을 발굴해 수록하고 감평하는 작업에 충실했다. 1990년대 집필에 김학선이 참여한 점도 의미가 깊다. 이런 작업은 선배에서 후배로,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가는 것이다.
한국 팝은 한국 대중음악의 서양화이자 토착화를 뜻한다. 일제강점기 ‘쟈스(재즈)’를 연주했던 악극단에 한국 팝의 뿌리가 있으나, 이 흐름이 본격화한 것은 1960년대 초다. 영미에서 1950년대 뚜렷해진 청년 취향의 대중음악인 팝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곧장 세계로 퍼졌고, 한국에서도 ‘팝 혁명’이 일어났다.
청년들은 수입된 서양 팝을 들으면서 즐겼고, 변형하고 가공한 번안곡을 노래하고 연주했으며, 온전히 소화해 토착화한 팝을 꾸준히 창작했다. 한국 팝 음악가들은 서양 팝을 수용하는 동시에 한국인의 취향에 맞춰 이를 변형·발전시키는 작업에 충실했으며, 결국 대중의 문화적 감수성 자체를 바꾸었고, 현재의 세계적 한국 팝 열풍의 토대를 놓았다.
발굴 여행의 출발은 1960년대 초 미군 무대에서 ‘양약(洋樂)’을 연주하던 음악가들이다. 미8군 무대 출신 가수들인 한명숙·최희준·패티 김은 손석우·길옥윤이 작곡한 ‘현대적 국산 대중음악’으로 무장하고 세련된 무대 매너, 자유분방한 화술 등을 선보이며 ‘일반 무대’에 나타났다. 이들의 현대성은 신중현으로 대표되는 ‘소울’ 가요와 그룹사운드 문화로 화려하게 분출했다.
1970년대는 포크와 록의 시대였다. 긴급조치와 유신체제의 억압 속에서 청년들은 통기타 하나를 들고 자작곡을 연주하면서 청춘을 표출하는 동시에 시대 풍자와 비판에 나섰다. 김민기·조동진·양희은의 포크, 김추자·장현·박광수의 ‘소울’, 검은 나비·신중현과 엽전들의 ‘로크’, 산울림·활주로의 캠퍼스 그룹사운드, 혜은이·이은하의 댄스 여가수가 이 시대를 대표한다. 김민기는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으로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개막을 알렸고, 조동진은 ‘나뭇잎 사이로’로 시대의 슬픔과 아픔을 표현하는 서정성을 드러냈다.
1980년대의 주인공은 ‘장소’였다. 어디서, 누가, 무엇을 노래하고 연주하느냐에 따라 한국 팝의 역사가 펼쳐진다.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의 왕은 조용필이었고, 주현미는 신사동에서 영동 스타일을, 나미는 ‘빙글빙글’ 돌면서 뉴웨이브 댄스 열풍을 일으켰다. 신형원과 이문세는 MBC가 있던 정동의 별이었고, 광화문 생음악살롱에서는 들국화·해바라기가 꽃피었으며, 신촌엔 김현식·한영애·유재하가 아지트를 형성했다. 대학로는 김광석·노찾사·한돌의 거리였고, 박남정·김완선의 댄스는 이태원의 밤을 불태웠다.
1990년대는 억압적 군부 독재 시대가 끝나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사회 전체에 자유가 넘쳤다. 신해철의 ‘재즈 카페’는 이 시대를 압축한다. 기존 음악의 경계와 한계를 넘어서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었고, 댄스·록·발라드·아이돌·힙합·인디 등 어떤 음악도 시도할 수 있었다. 대중의 호응도 엄청나서 비주류에서도 음반 10만 장 판매는 기본이었다. 신해철·이승환·서태지·신승훈·김건모·룰라·god·이적·자우림 등 각자의 ‘우상들’이 넘쳐났다.
한국 팝은 2000년대 중반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 1960년대부터 이어져 왔다. 서양 팝을 수용해 자신을 혁신했고, 선배들의 음악을 이어받아 발전했다. 이 책은 한국 팝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한국 팝의 세계사적 동시성과 미학적 역사성을 증명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이 책에서 시대와 함께 호흡해 온 한국 팝의 실체를 확인하는 동시에 한국 팝이 우리 현대 문화 전체에 끼친 영향을 피부로 체험하게 됐다. 오랜 시간 고된 작업을 수행한 저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각 권 488쪽·2만8000원, 596쪽·3만 원, 768쪽·3만2000원, 756쪽·3만2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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