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천직(天職)
필자는 남들보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내성적인 성격에다 말수까지 적어 뜻하지 않은 오해도 많이 받는 편이다. 40대 초반까지도 사모임에 나가면 많은 분들이 필자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고 할 정도였다. 이런 성격 탓에 '공연기획자'라는 직업이 나에게 과연 맞는 것일까?, 평생 이 직업으로 밥은 먹고 살 수 있을까? 하고 염려하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시립교향악단에 근무하던 시절 단내 복잡한 일로 지휘자와 오전부터 회의가 길었던 어느 날이다. 당일 오후 '찾아가는 음악회' 지휘를 맡았던 그는 리허설을 위해 공연 장소로 먼저 이동했고, 필자는 남은 일을 처리하고 리허설이 거의 끝나갈 즈음 공연 장소에 도착했다. 리허설이 끝난 후 무대 위 조명기기와 음향기기 설치 상태 등을 다시 꼼꼼히 점검했고, 그날 음악회는 무난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음악회가 끝난 후 지휘자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필자에게 '천직이야, 천직'이라 말하는 것이었다. 뜬금없는 말에 이유를 물으니, 본인은 오늘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리허설 뿐 아니라 공연이 끝날 때까지 모든 게 무척 힘들었는데, 리허설이 끝난 후 무대를 점검하고 음악회를 진행하는 필자의 모습이 자기와는 다르게 무척 평온해 보여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천직(天職)은 '타고난 직업이나 직분'을 이야기한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필자는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끼거나 염려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지휘자의 한마디가 필자에게 큰 깨달음과 위로가 됐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 직업이 천직인지 아닌지 솔직히 아직도 모른다. 어쩌면 그 날 이후로 직업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고, 사소한 스트레스를 큰 실수로 만들기도 하며, 벌써 30년 가까이 이 길을 걷고 있다. 무대 위의 예술가와 객석의 관객을 연결해 주는 이 일이 '천직'이 아닐지라도 필자는 이 일을 사랑한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소. 오직 나에게 주어진 길을 따를 뿐'이라 말하던 한 뮤지컬의 노랫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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