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나와 당신, 우리 모두는 관종이 아닌가

최재봉 2022. 5. 27.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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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는 타고난 관종인가봐. 사람들이 나를 봐주는 게 너무 짜릿해."

이서수의 단편 '젊은 근희의 행진'에서 화자인 문희의 동생 근희가 언니에게 하는 말이다.

"걸레들이나 입는 옷"(언니 문희의 표현)을 입고 몸을 한껏 드러낸 채 진행하는 동생의 유튜브에 언니는 불만이지만, 이른바 엠지(MZ) 세대인 근희는 언니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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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이란 말이 좀 그렇죠
손원평 외 지음 l 은행나무 l 1만4000원

“언니, 나는 타고난 관종인가봐. 사람들이 나를 봐주는 게 너무 짜릿해.”

이서수의 단편 ‘젊은 근희의 행진’에서 화자인 문희의 동생 근희가 언니에게 하는 말이다.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즐기며 그를 위해 자신을 포장하고 노출하기를 서슴지 않는 태도가 근희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혐오와 시샘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관종’을 주제로 한 합동 소설집이 나왔다. 손원평, 이서수, 한정현 등 젊은 작가 8명의 단편을 모은 <관종이란 말이 좀 그렇죠>는 출판사 은행나무가 내는 테마 소설집 ‘바통’의 다섯번째 주자다.

수록작 모두가 취지에 부합하지는 않아 보이지만, 손원평(사진)의 ‘모자이크’는 에스엔에스 시대 관종의 탄생과 그 파장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길 봐도 노답 저길 봐도 노답”인 막막한 상태에서 탈출구로 유튜브를 택한다. 계정을 만들고 자신의 손과 발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고 보정을 해서 올린 콘텐츠가 뜻밖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구독자가 늘면서 내용은 점점 더 과감해진다. 실제 삶이 아니라 자신이 소망하는 신분과 일상을 꾸며서 제시하며 “나 제정신인가” 의심도 하지만, 그저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라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소설의 후반부는 그렇게 거짓으로 보여주는 삶의 필연적인 파국 그리고 그에 대한 주인공의 파괴적 대응을 그리지만, 소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설 말미에 가면 이 이야기가, 주인공이 자신을 취재하러 온 방송 피디에게 들려주는 내용임이 드러나는데, 그가 피디에게 하는 말에 다수의 독자가 공감할 것이다.

“전 남들과 비슷했던 것뿐이에요. 좋은 소리 듣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그리고 사랑받고 싶었다고요.”

‘젊은 근희의 행진’의 주인공 근희는 회사를 그만두고 책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운영하다가 사기에 휘말려 연락이 두절된다. “걸레들이나 입는 옷”(언니 문희의 표현)을 입고 몸을 한껏 드러낸 채 진행하는 동생의 유튜브에 언니는 불만이지만, 이른바 엠지(MZ) 세대인 근희는 언니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다. “책도 아름답지만 내 몸도 아름다워.” 관종이라며 멸시했던 동생의 삶을 문희가 이해하고 포용하게 되는 과정을 소설은 따라간다.

책에는 이밖에도 한정현의 ‘리틀 시즌’, 임선우의 ‘빛이 나지 않아요’, 서이제의 ‘출처 없음, 출처 없음.” 등이 실렸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오계옥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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