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실질적 문맹사회에서 벗어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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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러시'를 말하는 책에서 '파울루 프레이리'라는 이름을 발견한 것은 뜻밖이었다.
"읽고 쓰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일을 책임지고 수행하고 실천하는" 삶의 경험은 "자신의 리터러시 행위가 공동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분석할 수 있는 지혜와 함께, 그것이 불러올 수 있는 예기치 않은 결과들에 대해서 미리 조사할 수 있는 성실함과 치밀함"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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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조병영 지음 l 쌤앤파커스(2021)
‘리터러시’를 말하는 책에서 ‘파울루 프레이리’라는 이름을 발견한 것은 뜻밖이었다. <페다고지>로 유명한, 그러나 일견 더는 읽히지 않는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인물이어서였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 엄기호는 파울루 프레이리가 억압받는 자의 말과 앎에는 이미 문해력이 내장되어 있고, 교육은 이를 끌어내 발현시키는 것이라 말했다고 강조했다. 상식과 달리, 민중이 무지한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민중의 언어에 무지한 셈이다. 같은 책에서 김성우는 이를 바벨탑 쌓기와 다리 놓기라는 메타포로 표현했다. 바벨탑 쌓기는 리터러시 능력 덕에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해 타자를 억압하는 태도를 이른다. 다리 놓기란 능력 있는 자가 없다고 여기는 무리를 더 이해하고 소통하려 애쓰는, 실천적이고 민주적인 윤리를 가리킨다.
조병영은 <읽는 인간>에서 프레이리를 인용하면서 리터러시란 “세상을 읽기 위해서는 첫째로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하지만 글을 읽는 일(수단)은 늘 세상을 읽는 일(목적)에 종사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면 이 책의 열쇳말인 ‘실질적 문맹’에 주목하게 된다. 이 개념은 “개인과 공동체의 더 나은 삶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기호를 다루고 의미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바, 지은이는 이런 사회가 되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질문하지 않는 시험사회다. 모든 탐구는 질문에서 비롯하는 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정당한 근거의 가치를 깨우치고 합리적 사유능력을 키운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답이 분명한 질문만을 강요한다. 질문하는 능력을 키울 여지가 없다. 두 번째는 대화하지 않는 사회다. 리터러시는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이 능력은 대화를 통해서 심화하고 확장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시나 명령만 있는 현실은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그럴듯한지 허술한지, 쓸 만한지 무모한지 확인할 길이 없”게 되고 만다. 세 번째는 책임지지 않는 방임사회다. 돈과 권력을 내세워 군림하는 자는 자신이 하는 말, 읽고 쓰는 법, 생각을 소통하는 양식에 책임지지 않는다. 이런 무례한 사회는 제대로 읽고 쓰고 소통하는 기회를 고사시키며 “리터러시의 공동체적 성장을 방해”한다.
지은이는 책임의 부분을 확장해 설명한다. 리터러시 능력을 키우려면 당연히 처음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읽고 쓰고 생각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말은 책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읽고 쓰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일을 책임지고 수행하고 실천하는” 삶의 경험은 “자신의 리터러시 행위가 공동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분석할 수 있는 지혜와 함께, 그것이 불러올 수 있는 예기치 않은 결과들에 대해서 미리 조사할 수 있는 성실함과 치밀함”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리터러시와 민주적 시민의식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은이는 일상에서 글을 읽을 때 ‘정신의 관료화’를 경계하라 했다는 프레이리의 말도 인용했다. 누군가가 정해준 방식대로 읽는 것, 영혼과 의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읽는 일에 익숙해지지 말라는 충고다.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비판적 질문을 던지며 읽어야 성장하고 변화한다. 실질적 문맹에서 벗어나는 길이 바로 이 지점부터이겠구나 싶었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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