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데리다에겐 '비밀의 취향'이 있다

최원형 2022. 5. 27.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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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취향> 은 1993~1995년 사이 자크 데리다(1930~2004)가 이탈리아 철학자 마우리치오 페라리스와 나눴던 대담을 실은 책이다.

주로 페라리스의 질문에 데리다가 답한 내용으로, 1997년 이탈리아어로 한 차례 출간된 바 있으나 훗날 데리다 아카이브에서 프랑스어 타자본이 발견되어 2018년에야 대담을 더욱 정확하게 복원한 텍스트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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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취향
자크 데리다·마우리치오 페라리스 지음, 김민호 옮김 l 이학사 l 1만6000원

<비밀의 취향>은 1993~1995년 사이 자크 데리다(1930~2004)가 이탈리아 철학자 마우리치오 페라리스와 나눴던 대담을 실은 책이다. 주로 페라리스의 질문에 데리다가 답한 내용으로, 1997년 이탈리아어로 한 차례 출간된 바 있으나 훗날 데리다 아카이브에서 프랑스어 타자본이 발견되어 2018년에야 대담을 더욱 정확하게 복원한 텍스트가 나왔다.

대담에서 데리다는 “누구라는 물음은 해체를 위한 근본적 지렛대”이기 때문에 ‘비망록’이랄 수 있는 어떤 자서전적 작업에 줄곧 흥미를 느껴왔다고 말하는데, 그 말처럼 3년에 걸쳐 진행된 대화는 데리다 삶과 사유의 여러 모습들을 이리저리 드러내어 펼쳐 보인다.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유대인 가족에서 태어난 데리다는, “(유대인이란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을 때, 이 반유대주의적인 순간에 지성적으로 규정되었다”고 말한다. 그에겐 프랑스어가 유일한 언어였으나 동시에 “그 언어가 다른 곳에서 온 것이라는 감각”이 있었고, “학교로부터 쫓겨났을 때 이런 낯섦의 감각, 외부적이라는 감각, 귀속되지 않았다는 감각은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자크 데리다. <한겨레> 자료사진

해체, 도래, 타자, 환대, 정의 등을 말하는 데리다의 “출발점은 그런 귀속점이 중단되는 곳”이다. 데리다에게 자아는 (집단적인 자아조차도) “타자성을 제 고유의 조건으로 함축”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스스로 해체되고 탈구된다. 타자는 자아보다 앞서 이미 자아의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은 매끄러운 ‘이음매’를 어긋나게 만들며 마치 메시아처럼 도래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내 자아의 소유권자가 아니게끔 만드는 것, 환대를 향해 개방된 장소의 소유권자가 아니게끔 만드는 것이다.” 데리다에게 모든 타자는 서로 전적으로 다른 독특성을 지니며, 그렇기에 어떤 동일성이나 유사성 아래로도 환원될 수 없다.

단지 “서로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는 것에만 합의할 수 있다면, 거기서 남는 것은 누군가를 무언가로 귀속시키기 위한 전쟁과 논쟁이 불가피하다는 결론뿐일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여기서 더 나아가 “모든 실존자가 공유할 수 없는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대한 합의”가 있다며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비밀의 취향’이란 책 제목은 이 대목에서 따왔다. 단순화해 말하자면, 모두에게 모든 것을 공적인 공간에 꺼내 놓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귀속되지 않음’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공유하는 가운데 이를 비밀로 부쳐두자는 것이다. 가족이든 국민이든 언어든 “무언가를 공통물로 삼는다는 것은 곧 비밀의 상실을 뜻한다.”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독특성과 보편성이 이 대목에서 서로 교차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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