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분노의 요설로 고발하는 살인과 부패
소년 '시카리오'의 살인 그리며 절망과 분노 속 진한 슬픔 전달
청부 살인자의 성모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 송병선 옮김 l 민음사 l 1만3000원
“코무나에는 오래전부터 받은 만큼 갚아 주는 전쟁이 존재해. 동네 대 동네, 블록 대 블록, 조직과 조직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어. (…) 코무나의 모든 사람은 사형을 선고받은 거나 다름없어.” “열두 살이 되면 코무나의 아이는 늙은이와 다름없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미 누군가를 죽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를 죽이게 돼. 조만간(…)”
스페인어 ‘코무나’는 공동체를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인 외곽 산동네를 가리킨다. “판잣집 혹은 불법 가옥의 동네이며, 도시 계획 없이 훔친 땅 위에 급히 짓고 훔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둑맞지 않기 위해 피를 흘리며 지켜낸” 이 동네는 지난 시절 ‘시카리오’라 불린 청부 살인자들의 온상으로 악명이 높았다. ‘마약 왕’으로 알려진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본거지 역시 이곳이었다.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콜롬비아 작가 페르난도 바예호(80)의 1994년작 소설 <청부 살인자의 성모>는 코무나 출신 시카리오를 등장시켜 폭력과 절망에 찌든 콜롬비아의 현실을 비판한 작품이다.
바예호는 바로 이곳 메데인의 코무나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메데인 대학교와 콜롬비아 국립대 등에서 공부하다가 유럽과 미국을 거쳐 1971년부터 2018년 귀국할 때까지 멕시코에서 지냈다. 그는 콜롬비아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 현대 문학을 이끄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스페인어권 문학계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 로물로 가예고스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동시에 영화 감독이자 언어학자로 활동하며 동물권 운동과 채식주의와 관련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동성애자이자 무신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청부 살인자의 성모>는 코무나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콜롬비아를 떠나 있다가 귀국한 장년 남자 ‘나’가 십 대 중반의 시카리오 알렉시스와 함께 지내며 겪은 일들을 그린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마약 카르텔이 무너진 뒤 일거리가 없어진 알렉시스는 몸을 파는 일로 생계를 꾸리다가 ‘나’를 만나 연인 관계를 맺게 된다. 소설은 ‘나’의 독백으로 서술되는데, 속사포 랩을 닮은 문장들은 알렉시스와 같은 젊은이들이 무의미하게 저지르는 살인과 복수를 중계하듯 나열함으로써 폭력에 무감해진 현실을 고발한다.
코무나 출신이고 언어학자이자 작가라는 점에서 화자 ‘나’는 작가 자신을 닮았다.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늙은 몸으로 죽기 위해 돌아왔”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화자가 보기에 조국 콜롬비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범죄가 잦은 나라였고, 메데인은 증오와 원한의 수도였”다. 그렇다는 사실의 가장 명백한 증거가 바로 그의 연인이자 실직한 시카리오인 소년 알렉시스다. 두 사람이 동거하는 아파트 이웃집 펑크족 젊은이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대해 화자가 “이 개자식을 죽여 버리고 싶어”라며 불평하자 알렉시스는 실제로 길에서 마주친 그의 이마에 총을 쏘아 살해한다.
알렉시스는 이어 공원 입구에서 검문을 하던 군인 셋을 쏘아 죽이고,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몸이 부딪친 뒤 ‘호모’ 운운하며 욕설을 퍼부은 청년의 입에 총알을 박아 넣어 죽이며, 라디오 음악 소리를 줄여 달라는 부탁에 오히려 볼륨을 최대로 키운 택시 기사를 쏘아 죽인다. 불친절한 식당 종업원, 주먹다짐을 하던 열 살 어름의 아이들과 구경꾼들, 짐을 잔뜩 실은 마차를 끄는 말에게 채찍을 휘두르던 짐마차꾼 등이 희생자로 뒤를 잇는다. 알렉시스의 살인에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어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여섯을 한꺼번에 살해하기도 한다. “살아서 돌아다닌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알렉시스를 가리켜 화자는 “사악한 자기 종족을 파멸시키기 위해 메데인 위로 내려온 죽음의 천사”라 표현하는데, 살인과 죽음에 관한 화자의 태도는 알렉시스에 못지 않게 태연하고 냉담하다. “메데인에 사는 건 죽은 채 이 삶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여기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죄가 있고, 번식한다면 더 많은 죄가 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만연한 살인과 폭력에 사람들은 단지 무감해질 뿐만 아니라, 은밀하게 타인의 죽음을 즐기며 그로부터 일그러진 행복감을 끄집어낸다. 살인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스스로 또 다른 희생자가 되지 않고자 고개를 숙이고 살인자의 눈을 피한다. ‘인형’이라 불리는 시체 주변에 모여든 구경꾼들의 “야비하고 천한 영혼 밑바닥부터(는) 말할 수 없는 은밀한 기쁨이 용솟음”친다.
밥 먹듯이 살인을 일삼던 알렉시스 자신도 화자와 함께 길을 가던 중 총에 맞아 숨지고, 화자는 알렉시스를 빼닮은 시카리오 윌마르를 또 다른 애인으로 삼는데, 알렉시스와 윌마르 사이의 감추어진 인연이 소설 말미에서 드러나면서 화자와 독자를 아울러 충격에 빠뜨린다.
알렉시스를 비롯한 시카리오들은 주일이면 착실하게 성당에 나가 성모에게 기도를 올린다. 청부 살인을 차질 없이 수행하게 해 달라는 것, 적들의 총알로부터 자신을 지켜 달라는 것이 기도의 내용이고, 어디까지나 ‘청부’ 살인인 만큼 신부들은 이들의 죄를 기꺼이 사해 주고 축복을 내린다. “콜롬비아 정부는 제일의 범죄자”이고, “이 땅에서 가톨릭교보다 더 천하고 부패한 것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정부와 종교에 대한 화자의 반감은 강렬하다. 그런데 절망과 분노로 불을 토하듯 뿜어내는 화자의 요설을 듣고 있다 보면 어느틈엔가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연민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가난을 끝내는 방법이 청산가리이며 비행 청소년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박멸하는 수밖에 없”다는 그의 주장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반어적 풍자 에세이 <겸손한 제안>을 떠오르게도 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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