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깊게, 때론 소박하게.. 하루키의 슬기로운 수집생활 [Weekend Book]
가이드북 넘어선 고급정보 가득
애착 티셔츠에 담긴 후일담 통해
작가의 시시콜콜한 일상 엿보기
무언가를 수집하는 활동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인류의 DNA에 각인된 본능이다. 기록에 따르면 우리의 조상은 기원전 4000년부터 석기의 모형을 모으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수집이 즐거운 이유는 행복 호르몬 도파민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희소성 있는 자원을 수집할 때 보상으로 도파민을 분비한다. 이 도파민 덕분에 수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기있는 취미가 될 수 있었다.
수집을 취미로 삼은 이들 중에는 고 이건희 회장, 마이클 잭슨 등 다양한 유명인사들이 포함돼 있는데, 오늘 소개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사진)도 성실한 수집가다. "딱히 물건을 모으는 데 흥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새 이런저런 물건이 '모이는' 것이 내 인생의 모티프"라고 말하는 소설가의 서재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의 수집생활을 엿볼 수 있는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신간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문학동네 펴냄)는 하루키가 60년간 모아온 1만5000장의 LP 컬렉션에 관한 책이다. 그 광활한 컬렉션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가 그간 소설에서 보여줬던 음악에 대한 해박함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오래된 LP판이 "소박한 온천에 몸을 담근 것처럼 내 마음을 안에서부터 서서히 덥혀준다"고 했다. 수집이 주는 행복감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기도 힘들 것이다. 딱히 실용적 가치는 없지만 다만 존재함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주인의 마음을 훈훈하게 덥히는 것. 그것이 수집품의 쓸모가 아니던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는 작곡가나 사조를 중심으로 클래식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와 레코딩 환경을 비교하며 곡을 소개하는 구조라 읽기에 아주 편안한 책은 아니다. 빈티지 레코드의 특성상 작가가 언급한 바로 그 판을 시중에서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문제도 독서의 허들을 높인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이 하루키의 말처럼 "체계적,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가이드북"이 아니라 집요한 사랑이 담긴 "편향의 집적"이기 때문이다. 책에 담긴 방대한 클래식 연주의 세계는 인터넷이나 가벼운 교양서를 통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고급 정보다. 그 고급 정보의 세계를 하루키와 함께 파헤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우리에게는 여정을 도와줄 친구 유튜브가 있다. 하루키가 들은 것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곡을 찾아보면서 그가 느꼈던 전율을 상상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가 될 것이다.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가 진지한 수집의 결과라면 '무라카미T'는 조금 더 사적이고 자연스러운 티셔츠 수집의 기록이다. 서점 홍보용 티셔츠,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적힌 티셔츠, 토끼인지 고양이인지 모를 것이 그려져 있고 의미 불명의 단어가 인쇄된 티셔츠들을 보고 있자면 어딘가 실없으면서도 유쾌한 기분이 든다.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모아지게 됐다는 티셔츠들의 이야기에는 인간적이고 친근한 하루키의 일상이 녹아있다. 서핑, 달리기, 위스키 시음, 일본에서의 생활과 해외를 오가는 작가로서의 삶 등 세계적인 소설가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무언가를 모으며 행복을 찾는 인간의 본능에는 그렇게 모아진 다른 사람의 컬렉션을 들여다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포함돼 있는 것 같다. 하루키는 "입이 딱 벌어지게 비싼 값으로 거래되는" 수집품에는 흥미가 없고 "특별한 가치가 없더라도 내용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했지만 독자들이 그의 수집품을 놀라워하고 부러워하는 걸 보면 내심 흡족하게 여길 것 같다.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컬렉션만큼 그 사람을 대표할 만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진지한 수집가, 클래식을 애호하거나 독특한 취미를 찾고 있는 사람, 그리고 '하루키 월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특히 일독을 권한다.
한지수 교보문고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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