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법 "묻지마 임금피크제는 무효", 연공서열 임금 체계부터 손봐야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기준으로 보수를 깎는 임금피크제는 연령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 위반이므로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26일 한 퇴직 연구원이 재직했던 기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일정 나이에 이르렀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임금피크제는 지난 2013년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데 따른 기업 측의 대응책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2015년 모든 공공기관이 도입했고, 현재 300인 이상 기업의 52%가 노사 합의 등을 통해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판결에 따라 개별 사업장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시행 방법 등을 두고 노사 간 재협상 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근로자들의 임금 소송도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 재계는 ‘제2의 통상임금 판결’이라며 노무 리스크가 높아질 것을 우려했다. 임금피크제가 흔들릴 경우 기업들이 신규 고용을 꺼리게 돼 청년 고용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애초 임금피크제는 연공서열형의 경직적 임금 체계 때문에 불가피하게 도입할 수밖에 없는 제도였다. 근속 연수에 따라 자동적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가 여전한 상황에서 정년까지 연장하면 인건비가 급속하게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는 2013년 정년 연장법을 통과시키면서 “임금 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선언적인 조항을 넣는 데 그쳤다. 정년 연장에 따라 손봐야 할 제도 개선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 여파가 이번에 임금피크제를 흔들 수 있는 대법원 판결로 나온 것이다.
이번 판결은 임금 체계 개편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호봉제 대신 직무와 성과에 따른 급여 시스템으로 바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 임금 체계 개편은 노사 합의로 추진할 수 있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정부가 필요한 제도를 만들고 공공 부문에서 직무급 체계 모델을 만들어주는 등 적극 지원해야 민간 부문으로 확산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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