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韓·日의 납북 피해자 기억법

안준호 기자 입력 2022. 5. 2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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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정상회담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빠듯한 일정 중에도 지난 23일 도쿄 영빈관에서 납북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일본 납북 피해자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납북 당시 13세)의 모친 사키에씨 등 피해자 가족들에게 “(자녀를 잃은) 당신의 마음을 나도 잘 안다”고 했다. 그리고 북한에 일본 납북 피해자 12명에 대한 완전한 해명을 촉구했다고 한다.

일본을 방문 중인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 도쿄 아카사카 영빈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의 가족들과 만나고 있다./교도 연합뉴스

배석한 피해자 가족과 일본 정치인들은 가슴에 파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파란 리본은 일본인 납북 피해자와 가족을 갈라 놓은 동해, 그리고 이들을 연결해 주는 파란 하늘을 의미한다. 피해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의 가슴에서 늘 빠지지 않는 것이 이 파란 리본이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은 알았을까. 메구미의 남편이 1978년 전북 군산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납북된 고교생 김영남(당시 17세)이었단 사실을. 그리고 전후 북한에 납치된 한국인이 516명으로, 일본 피해자의 40배가 넘는다는 사실을. 피해 당사국인 한국이 침묵하니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지난 1977년 전남 홍도로 수학여행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게 납북된 이민교(납북 당시 18세)씨의 어머니 김태옥(90)씨는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도와주는 메구미 엄마가 부럽다”고 했다. “아들을 돌려 달란 게 아녜요. 평양에 살고 있다고 하니 그저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목소리라도 한번 듣게 해주세요.” 소식통과 북한 당국이 작성한 평양 시민 신상 자료 등에 따르면, 이씨는 평양에 거주하며 대남 공작 사업에 종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 김씨는 앞서 2019년에도 전후 납북자들의 생사 확인을 요구하는 진정서와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그는 편지에서 “수학여행을 보낸 이 어미의 죄요, 그래서 북에 납치된 것도 어미의 죄”라며 “죽기 전에 아들 얼굴 한번 보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위로의 말도 듣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중반 1000여 명에 달하는 전후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이 펼쳐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노란 리본을 단 정치인은 없었다. 납북자와 국군 포로는 남북 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치부됐고, 그들은 시나브로 잊혔다. 그사이 고령의 피해자와 가족은 하나둘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 있다.

“생때같은 자식 잃어버린 죄 많은 어미가 무슨 낙이 있어 살겠어요. 그저 살아있는 내 새끼 얼굴 한번만, 한번만 보고 가게 해주세요.” 구순의 노모는 40년째 메아리 없는 절규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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