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 대란·과잉 규제에.. 둔촌주공 재건축, 초유의 공사 중단

정순우 기자 2022. 5. 2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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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우의 뉴스 저격] 파국 맞은 1만2000가구 재건축

지난 23일 국토교통부·서울시·강동구청 소속 공무원과 변호사·회계사 등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15명 안팎의 합동 점검단이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조합 사무실을 방문했다. 조합과 건설사 간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지 한 달이 넘도록 협상에 진전이 없어 조합 운영 실태 등 재건축 사업 과정 전반을 검증하러 나선 것이다. 합동 점검단은 다음 달 3일까지 휴일 없이 활동하기로 했다. 특별한 비리 혐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정부와 지자체가 총출동해 아파트 재건축 조합을 대대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건설·부동산 업계에서는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중단 사태가 서울의 주택 공급 차질 등 사회적 이슈로 번지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현장에‘공사 중단’현수막이 붙어있다. 공사 중단 장기화로 서울 주택 공급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오자 정부와 서울시가 23일부터 조합 운영 실태 등을 대대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1만2000여 가구 건설 현장, 공사비 갈등에 ‘셧다운’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은 기존 5930가구를 헐고 1만2032가구를 새로 짓는 사업이다. 완공되면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가구)를 넘어 단일 단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 아파트가 된다. 지난달 15일 공정률 52%, 골조 공사가 20층 정도 마무리된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됐다. 건설사 용역 직원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며 건물 외벽과 주요 출입문에는 ‘공사 중단’ ‘유치권 행사중’ 같은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공사 중단 사태의 발단은 올해 2월 초 있었다. 2019년 말부터 공사를 해오던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롯데건설·대우건설)이 “조합이 공사비 증액 계약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공사를 계속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두 달 후 공사 중단’을 선언했다. 이 건설사들은 2020년 6월 가구 수 증가, 상가 건물 추가, 물가 인상 등을 이유로 2조6700억원이던 공사비를 3조2300억원으로 올리기로 당시 조합 집행부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출범한 새 조합 집행부는 “전임 집행부와 시공단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계약을 맺었다”며 공사비 증액 무효를 주장했다. 양측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건설사들이 ‘공사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꺼낸 것이다. 이에 조합은 며칠 후 계약 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맞불을 놓았고, 시공사 측이 “더 협상은 없다”며 건설 장비와 인력을 철수하고 공사를 중단했다.

4월 중순까지도 조합은 “시공 계약을 해지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지만, 실제 공사가 중단되자 “공사비 증액을 인정할 테니 계약서를 다시 쓰자”며 한발 물러났다. 조합의 태도 변화에 서울시가 나서서 중재를 시도했지만, 시공단이 “지금의 조합 집행부를 신뢰할 수 없다”며 결렬됐다.

◇분양가 책정 못 해 사업 일정 줄줄이 밀려

둔촌주공 재건축이 공사 중단이라는 파국을 맞은 데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조합과 건설사 간 복잡한 이해관계, 예기치 못한 자재 대란, 정부의 과도한 분양가 규제가 맞물린 총체적 난국”이라고 평가한다.

둔촌주공 사태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급격한 자재 값 인상이다. 건설사들은 조합과 2016년 10월 2조6700억원에 공사비 계약을 할 때보다 건설 원가가 30% 이상 올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원자재 대란 영향이 겹친 탓에 2020년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건설 공사비 지수 상승률만 21%에 이른다. 조합이 2020년의 변경 계약을 받아들인다 해도 건설사로선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

둘째 원인은 조금이라도 더 수익을 내려는 조합과 건설사의 이해가 양보 없이 충돌한 것이다. 통상 재건축·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로 비용이 증가하면 조합과 시공사가 적절히 분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둔촌주공은 양측 모두 자기들 이익만 앞세우면서 결과적으로 사업이 지연되고, 금융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결과를 불렀다. 강북의 한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조합과 건설사가 싸울수록 결국 은행만 좋을 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과도한 분양가 규제도 원인으로 꼽힌다. 애초 조합은 2019년 3.3㎡(1평)당 3550만원에 분양하려 했지만, 분양 보증 기관인 HUG(주택도시보증공사)는 2970만원에 맞추라고 요구했다. 주변 시세보다 턱없이 낮은 분양가에 조합은 분양 시점을 미뤘고, 2021년부터 시행된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게 됐다. 조합 처지에선 토지비와 건설 원가를 토대로 분양가를 매기는 분양가 상한제가 오히려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3월 분양을 목표로 조합이 산정한 택지비에 대해 한국부동산원이 ‘재검토’ 결정을 내리면서 또다시 분양 일정이 꼬였다.

조합과 건설사 간 갈등이 분양가를 높게 책정받기 위한 ‘꼼수’라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둔촌주공 평당 분양가가 3000만원에서 3500만원으로 500만원 오를 경우, 일반 분양 물량 4786가구를 모두 25평형으로 가정해도 추가 수익이 약 6000억원 생긴다.

◇서울 분양·입주 급감, 주택 시장도 불안

둔촌주공 재건축 파행은 서울 주택 시장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초만 해도 서울에서 연간 4만8137가구가 분양되리라 예상했는데 26일까지 분양했거나(3390가구) 분양 일정을 잡은 단지는 1만3461가구에 불과하다. 3만4000여 가구가 증발했는데, 여기서 둔촌주공 비율이 3분의 1을 넘는다.

둔촌주공 분양이 꼬이지 않았더라면 내년 8월 1만2000가구가 입주하면서 서울 아파트 매매·전세가 안정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1만2000가구는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2만2152가구)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하지만 공사가 중단되면서 2024년 입주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정부도 분양가 규제로 주택 공급이 지연되면서 시장 불안이 심화하는 상황은 막을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분양가 규제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조합이나 건설사가 기대하는 수준의 획기적 규제 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둔촌주공에 앞서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아 사업을 진행한 아파트와 형평 논란도 있고, 분양가를 대폭 올릴 경우 둔촌주공 청약을 기다리던 무주택자들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최근 “분쟁이 시끄러워지면 국토부가 나선다는 선례를 남길 순 없다”며 조합과 건설사의 무리한 요구까지 들어주진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로서는 조합원 이주비 등 지금껏 분양가 산정 때 인정해주지 않던 사업 비용을 일부 인정해주는 내용이 담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재건축·재개발 전문가인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건설사와 조합이 조금씩 양보하고, 정부도 주택 공급에 차질이 없게 분양가 규제를 풀어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절반이 노후 단지… ‘제2의 둔촌주공’ 막을 대책은?]

둔촌주공 공사 중단 사태의 해결 여부가 윤석열 정부의 ‘민간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통한 주택 공급’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사 원가 상승, 분양가 규제 등의 변수는 수도권 1기 신도시를 포함해 다른 재건축·재개발 사업에도 똑같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둔촌주공 문제를 정부가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민간이 주도하는 아파트 공급 활성화의 성패가 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26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현재 서울 전체 아파트(179만308가구) 중 55%(99만2240가구)가 입주 20년 넘은 노후 단지다. 재건축 가능 연한인 ‘입주 30년’을 앞둔 ‘20년 초과 30년 이하’ 아파트만 56만4147가구에 달한다. 여의도·압구정동·목동 등 현재 재건축을 추진 중인 단지의 사업이 마무리되기 전에 서울 전체 아파트의 3분의 1가량이 새롭게 재건축 대상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재건축 특별법을 만들기로 한 수도권 1기 신도시도 총 30만가구에 달한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서울 강남 등 인기 지역만 보면 마치 재건축·재개발이 거의 마무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국으로 범위를 넓히면 앞으로 20~30년은 재건축·재개발이 부동산 시장의 핵심 이슈가 될 것”이라며 “원활한 주택 공급을 위해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사업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둔촌주공 같은 사태를 막으려면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되,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은 강화해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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