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숨겨진 그리움
이 작은 봉오리에서 커다란 작약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믿기지 않아서 작은 꽃병에 꽂아 보았다. 무심히 사진을 찍고 보니 사진 안에 수많은 사연이 가득 담겨 있음을 깨닫고 놀랐다.
며칠 전 광주극장 김 전무는 작약 꽃봉오리 몇 개를 신문지에 말아서 들고 찾아왔다. 전시 관계로 상의할 일이 있어서 들른 것이다. 꽃을 들고 와서 다정스럽고 쑥스럽게 웃으며 조용히 내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른쪽에 보이는 낱장으로 된 달력은 지난해까지 같이 일했던 정민이가 디자인해서 만든 것이다. 그 아래 받침으로 보이는 빨강 책은 주용성 사진가가 홍콩 사태 때 다녀와서 만든 사진집이다.
뒤 화면의 사진은 ‘전라도닷컴’ 200회 표지 기념사진 전시를 하면서 산 것으로, ‘이상’의 표현을 빌리자면 ‘열병식’을 연상케 하는 푸른 옥수수밭이다. 그 사이에 엎드린 플라스틱 컵은 1991년 스웨덴에서 노르웨이로 가는 기차에서 역무원이 건네준 귀한 물 한 잔을 담은 컵이다. 당시는 유로화로 통합이 안 되어 있어서 유럽 각국의 화폐가 달라 국경을 지날 땐 돈이 없어 물 한 잔도 사 먹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탁상시계는 40여년 전 생일 선물로 직장 동료가 준 것인데 시계의 기능을 잊은 지 오래다. 왼쪽 분홍색 꽃 모양을 한 것은 수제 비누로 선물받은 지 10년도 넘었을 것이다. 그 아래 나무 상자로 보이는 것은 이미 고인이 된 일본인 친구 오노씨가 함께 사케를 마시다가 ‘일 홉짜리 술잔’에 신기해한 나에게 사 준 것이다. 이 앙증맞은 물방울 같은 꽃병은 문화의 섬 나오시마 옆에 있는 데시마섬에서 사 온 것이다. 숨어 있는 그리움이 꽃잎 되어 피어나는 봄날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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