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멈춰야 전진한다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뮤지션의 일상은 프리랜서에 가깝다. 한없이 게을러지거나 반대로 과하게 일에만 몰두하기 십상이다. 안타깝게도 난 후자에 속한 ‘일중독자’다. 취미도 딱히 없기에 일과 쉼의 구분이 잘 안 될 때가 많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온갖 미디어 콘텐츠도 나의 쉼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다. 휴식 시간을 가져보려 해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질 못하니 피로만 더 쌓인다. 주인 잘못 만난 나의 두뇌는 그렇게 온종일 혹사당하다 겨우 지쳐 잠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쉼에만 집중하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그런데 지난주, 낚시가 취미라던 친구에게서 함께 밤낚시에 가자는 연락이 왔다. 지나가는 말로 “한번 데려가 달라”고 한 걸 기억한 모양이다. 처음 해보는 밤낚시가 궁금하기도 하고, 잊지 않고 챙겨준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흔쾌히 따라나섰다.
결과는 ‘역시나’ 였다. 눈먼 고기가 아닌 이상 바늘에 떡밥 몇 번 꿰어본 게 전부였던 내 손에 잡힐 리가 만무했고, 결국 해 뜰 때까지 무료 급식소처럼 물고기들에게게 떡밥만 나눠줘야 했다. 반면 익숙하게 붕어를 너덧 마리 낚아 올린 친구는 연방 내 눈치를 살폈다. 자기가 끌고 온 내가 손맛을 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 달리 물 위에 뜬 형광색 찌를 멍하니 바라본 그 시간이 내게는 그토록 편안할 수 없었다. 일종의 안도감마저 느꼈다. 평소 늘 바쁘게 돌아가던 머릿속이 자연스레 사고를 멈추었고, 생각의 꼬리가 끊어진 자리에는 여유라는 녀석이 들어와 앉았다.
그러자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때론 멈추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이. 그동안 불필요한 것들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가며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 위안 삼고 있었음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시간은 무의미하다며, 심하게는 죄책감까지 느끼던 내겐 작지만 큰 깨달음이었다.
그날, 캄캄하고 고요했던 저수지에 버리고 온 건 떡밥만이 아니었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던 건 물고기를 낚지 못해서가 아니라 낚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낚시터를 나오며 행여 내가 지루했을까 미안해하던 친구에게 데려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조만간 다시 한번 오자는 약속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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