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컵 보증금제 유예의 아픔
며칠 전 나는 지하철에서 울고 말았다. 붐비는 전철 안에서 마스크를 추켜올리고 눈물을 흡수시켰다. 6월10일 시행 예정이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결국 6개월 유예되었다. 줄초상 치르는 것처럼 서러워한 이유는 실제 일회용품 규제가 줄초상을 치르게 생겨서다. 지난달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단속이 유예되었다. 6월부터는 컵 보증금제에 이어 매장 내 일회용 빨대와 종이컵 사용 금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굳이 일회용 컵에 보증금을 매겨 세상 불편하게 하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일회용 컵을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이 버린다. 1년간 국내에서 버려진 플라스틱 컵 84억개를 일렬로 세우면 지구에서 달까지 갈 수 있다. 같은 페트 제품이지만 음료병에는 재활용 분담금이 있는 반면 테이크아웃 컵은 깨끗한 재활용품을 더럽히는 훼방꾼이다. 테이크아웃 컵의 재활용률은 약 5%. 실제 2019년 홍대 앞에서 1000개의 컵을 주워 깨끗이 씻은 후 재활용 업체에 연락했지만 모두 수거를 거절했다. 테이크아웃 음료보다 저렴한 슈퍼마켓 음료도 20여년간 재활용 분담금을 내왔다. 바로 오염자 부담 원칙이다. 하지만 테이크아웃 컵은 예외였다.
이 발 달린 쓰레기를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300원을 붙이는 보증금제다. 150원이 안 되는 보증금 덕에 소주병과 맥주병의 전체 회수율은 97.9%고 소비자 직접 회수율도 63%에 이른다. 몇 년 전 독일 슈퍼마켓에서 생수 가격보다 두 배 더 비싼 용기 보증금에 놀랐다. 그 덕에 독일, 스웨덴 등은 해당 플라스틱 용기의 재활용률이 80% 이상이다. 최근 하와이에서는 음료병에 보증금제를 도입한 후 해변에 버려진 보증금제 용기의 절반 이상이 줄어들었다.
둘째, 실제 변화를 가져오려면 일회용품에 플라스틱세를 부과하든, 보증금을 붙이든, 사용제한을 하든 지금 당장의 손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미래의 큰 혜택보다 눈앞의 작은 손실에 민감한 손실 회피 성향을 지닌다. 인류 멸종보다 내일의 쓰레기 처리비가 걱정이고, 텀블러 1000원 할인보다 당장 300원의 보증금을 내는 사건에 더 민감하다. 즉 텀블러 할인은 한 줌의 친환경 실천자만 영향을 받지만 보증금제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 사회 전반의 변화를 가져온다. 유럽 제로 웨이스트 단체들도 전 유럽에 보증금제 시행을 내걸고 최근 네덜란드와 스페인에서 보증금제 시행을 반대하는 기업에 맞서 보증금제를 통과시켰다.
절망하는 대신 동네를 산책하며 1분 만에 테이크아웃 컵 12개를 주웠다. 가져간 종량제 봉투 10ℓ가 꽉 찼다. 국내 폐기물 부담금은 1㎏당 150원이다. 이를 13g 무게의 테이크아웃 컵으로 계산하면 컵 하나당 약 2원이다. 종량제 봉투를 가득 채운 컵 12개의 처리비가 24원이다. 너무 싸다. 시민들은 종량제 봉투 10ℓ 한 장을 250원에 산다. 이마저도 실제 쓰레기 처리비의 절반밖에 안 되고 수도권 매립지는 빠른 속도로 차고 있다. 나는 언젠가 카페 컵에 이어 편의점 일회용 컵에도, 독일과 스웨덴처럼 모든 음료병에도 보증금이 붙을 거라고 혼자 김칫국을 들이켰다. 말로만 플라스틱 반대, ESG 경영 누가 못할까. 실제 행동을 바꾸고 쓰레기를 줄이는 제도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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