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여기 살면 여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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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에 있으면 이쪽 방식으로, 저쪽에 있으면 저쪽 방식으로 사는 게 순리이고, 그렇게 하면 만사가 다 편할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남산 구석에 집을 지었으니 이것은 부엉이가 사람을 침범한 게 아니라 사람이 부엉이를 침범한 게 아니겠느냔 말이다.
설령 좋아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세부득 이르게 된 곳이 여기라면, 저기에 없는 것을 한스러워 하기만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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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노인이 남산에 정자를 짓고 살았다. 그런데 소나무 삼나무가 빽빽이 둘러싼 곳이어서 대낮에도 부엉이 소리가 시끄러웠다. 노인은 그 소리가 싫어서 점쟁이를 찾아 어떻게 하면 그 소리를 멈출 수 있는지 물어보려 했다. 그런데 마침 친구가 찾아와서는 엉뚱한 답을 내놨다. 친구의 답은 간결했다. 부엉이란 녀석은 본디 남산을 문으로 삼고 솔숲을 집으로 삼아 살아간다. 이는 사람들이 침범하지 못할 곳을 찾아 깊은 숲으로 숨어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남산 구석에 집을 지었으니 이것은 부엉이가 사람을 침범한 게 아니라 사람이 부엉이를 침범한 게 아니겠느냔 말이다. 주객전도, 적반하장!
그러니 억울함을 하소연하자면 난데없는 침입자를 만난 부엉이가 해야지, 세속을 피해 숲으로 찾아든 사람이 할 게 못 된다는, 매우 지당한 결론이었다. 조선 초기의 문신 성현(成俔)이 지은 ‘부휴자담론’(浮休子談論)에 있는 이야기이니, 이미 500년이 훨씬 더 된 글인데도 저자가 힘줘 강조하는 내용은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이것이 좋다고 이것을 하면서 여전히 저것을 원하는 병폐가 도처에 널려 있다. 설령 좋아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세부득 이르게 된 곳이 여기라면, 저기에 없는 것을 한스러워 하기만 할 일이 아니다.
도시에 살면서 공기 나쁜 것을 한스러워하거나 전원에 살면서 벌레 많은 것을 싫어한다면 어느 곳에 살아도 만족하기 어렵다. 젊어서 이 일 저 일 해내느라 바쁜 것을 싫어하거나, 늙어서 일 없이 한가한 것을 못 견뎌 한다면 평생 불만 속에 살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이 얼굴을 하겠다고 한껏 꾸미고는 동안으로 봐주지 않는다며 서운해 한다면, 이야기 속 부엉이가 나타나서 한마디 할지도 모르겠다. “크게 텃세할 생각은 없지만, 남의 동네 들어와 살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안 그래?”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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