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응원 덕분에 '세계 최고 한국어학당' 키워냈어요"

강성만 2022. 5. 2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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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우즈베크 타슈켄트1 세종학당 허선행 학당장

우즈베크에서 30년 한국어 교육에 매진한 허선행 타슈켄트1 세종학당장이 19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30년 타슈켄트 한글학교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 덕분이죠. 학생들이 저를 많이 응원해주었어요. 제 숙소 냉장고 안에 반찬도 가득 채워주고 결혼이나 회갑연 같은 집안 잔치에도 늘 초대해주었어요.”

허선행(57) 타슈켄트1 세종학당장은 전남대 사범대 윤리교육학과를 졸업한 직후인 1992년 3월 우즈베크 수도 타슈켄트 땅을 밟았다. 한해 전 광주 지역 인사들이 타슈켄트에 세운 광주한글학교 교사로 파견된 것이다. 늘 장래 희망이 교사였던 그가 한국과 그해 1월 수교는 했지만 대사관도 없던 낯선 나라를 찾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고려인들이 한국말을 배우도록 도와주고 싶었어요. 전남대 사범대 은사인 임채완 교수님이 옛 소련 시절 스탈린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고려인들이 모국어를 잃어버렸는데도 우리말을 가르쳐 줄 선생님이 없어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수업 때 많이 하셨어요. 시간이 갈수록 그 말이 강렬하게 떠오르더군요. 아버지가 제 몫으로 남긴 고향 나주의 한 뼘 밭을 팔아 여비와 1년 치 생활비를 마련해 우즈베크로 향했죠.”

최근 조철현 작가의 글로 지난 30년 ‘중앙아시아 한글 전도사’의 삶을 정리한 책 <허선행의 한글 아리랑>(라운더바우트)을 낸 허 학당장을 지난 1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허선행의 한글 아리랑> 표지.

그는 현지 생활 초기부터 학교 후원금이 끊기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으나 끝내 학교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어 개인 교습과 타슈켄트 한인신문 기자까지 하면서 번 돈으로 학교를 지탱했다. 그렇게 지킨 학교는 지금 한 해 1500여명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는 튼실한 한글학교로 우뚝 섰다.

30년 전 그의 목표는 ‘모국어 공동체의 확장을 통한 한글 세계화’였지만 지금은 ‘한국어를 통해 우즈베크 청소년의 꿈을 응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타슈켄트1 세종학당 수강생의 변화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 학기(4개월) 수강생이 30년 전 20명에서 지금은 500명으로 늘었어요. 예전에는 대부분 고려인이었지만 지금은 고려인과 우즈베크인이 반반이죠. 수강생의 90%는 한국 유학을 꿈꾸는 고교생과 대학생입니다. 나머지는 직장인이나, 결혼해 한국으로 가는 여성들이죠.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을 키워 한국 유학을 실현하고 한국 기업에 들어가도록 돕는 게 우리 학교의 가장 큰 목표이죠.” 그는 “한국어 습득 속도가 우즈베크인이 더 빠른 것 같다”고도 했다. “고려인들은 방문 취업 비자로 쉽게 한국을 오갈 수 있지만 우즈베크인들은 어느 정도 한국어 능력이 돼야 하니까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한국어 공부에 힘을 쏟는 것 같아요.”

그가 과욋일까지 하며 운영비를 마련했던 한글학교는 2000년 들어 한국 대사관의 정기 후원을 받아 재정에 숨통이 틔었고 세종학당으로 지정된 2011년부터는 교사 인건비와 운영비 지원까지 받으면서 교육에만 전념하고 있단다. 지난해 타슈켄트에 세종학당이 한 곳 더 늘어 학교명을 타슈켄트1 세종학당으로 개칭했다.

1992년 전남대 졸업 뒤 타슈켄트로
현지 ‘광주한글학교’ 교사 지원해
“고향 나주 밭 팔아 첫해 경비 마련”
30년간 고려인·현지인 등 8천여명

한글 전도사의 삶 기록한 책 출간
“정규학교 인증받아 졸업장 주고파”

지난 5월14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문화관 결에서 ‘허선행의 한글아리랑’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어 15일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허선행 출판기념회와 2022년도 \

학당은 현재 한국에서 파견한 교사 4명 등 모두 교사 12명이 있으며 시설은 교실 6개와 도서관, 요리 교실과 게스트하우스까지 갖추고 있다. “우즈베크인 교사가 2명이고 우리 학당 출신 교사도 3명입니다. 강의 시설이 부족해 도서관도 교실로 쓰고 있어요.”

그가 타슈켄트에서 만나 결혼한 러시아계 우즈베크인 아내 가르쿠샤 안나는 2015년부터 이 학교에서 한식 강의를 맡고 있다. 아내는 7년 전 <한국방송> 여의도 공개홀에서 열린 ‘2015 지구촌 한국의 맛 콘테스트’ 최종 결선에 진출해 3위에 오른 ‘한식 요리 실력자’다. 외동딸 엘리나는 올해 연세대 글로벌인재학부에 입학해 ‘한국 유학의 꿈’을 이뤘다.

그는 지난 30년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2007년 세계한인의 날에 외교부가 주관한 전 세계 3500개 한글교육기관 평가에서 1등을 해 국민포장을 받았을 때”라고 했다. “중앙아시아 한글 보급 15년의 공적을 한국정부로부터 인정받았으니까요.” 그는 지난해 국민훈장 동백장도 받았다.

허 학당장은 지금도 자신이 이끄는 학당이 세계 273개 세종학당 중 최고라고 자부했다. “한국어 교육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요. 현지에서 통용되는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 사용 교사를 각각 따로 채용해 학생들 공부를 돕고 있어요. 한류가 좋아 찾아오는 학생들을 위해 거의 매월 다양한 문화 행사도 합니다. 한국어 선생님들이 선호하는 학교여서 교사들 실력도 높은 편이죠.”

그가 30년 동안 배출한 한글학교 제자는 모두 8천여 명이다.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한국 가던 비행기에서 한 승무원이 저를 보고 ‘교장 선생님’ 하며 안아 주더군요. 카자흐 민족 출신으로 한국말을 잘하던 학생이었는데 한국 항공사에 취직했더군요. 많이 기뻤죠. 제가 우즈베크 정부 행사에 참석했을 때도 외교부에 근무하는 제자로부터 도움을 받았죠.”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는 한글학교 학생이자 교사였던 신이리나씨란다.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너무 잘 배워 교사로 채용해 18년을 동행했어요. 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았던 성실한 선생님이었죠. 결혼해 한국으로 가야 한다고 학교를 그만뒀을 때 무척 섭섭했어요.”

앞으로 꿈을 묻자 그는 “한글학교를 한국어 중심의 정규학교로 키우는 것”이란다. “제 제자들이 우즈베크 정부의 공식 학력 인정을 받는 졸업장을 받고 또 그 졸업장을 제 이름으로 줄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아요.” 그의 지난 30년은 “사람농사가 최고”라는 생각을 아들에게 심어준 부친의 영향이 컸다. 어떤 아버지였냐고 묻자 그는 “아버지는 농부였지만 항상 머리맡에 책이 있었고 역사와 한문 공부를 많이 하셨다”고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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