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해방

한겨레 2022. 5. 2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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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옷을 개며 오늘따라 작아 보이는 어깨에 마음이 머뭅니다.

옷이 만들어질 때 이미 정해진 폭, 그 좁은 양쪽 어깨솔기와 버성기며 팔을 앞뒤로 흔들고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떠오릅니다.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해방될 때쯤 우리가 비로소 자유로워지려나? 가끔 그런 순환논증 같은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갇힌 사람은 해방되고 싶고, 술은 그런 인간을 비교적 싼 값에 잠시나마 풀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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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게티이미지뱅크

[삶의 창] 김완 | 작가·특수청소노동자

아내의 옷을 개며 오늘따라 작아 보이는 어깨에 마음이 머뭅니다. 옷이 만들어질 때 이미 정해진 폭, 그 좁은 양쪽 어깨솔기와 버성기며 팔을 앞뒤로 흔들고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떠오릅니다. 옷이라는 연약한 보호막 하나 겨우 걸친 채 부표처럼 세파에 흔들리고 깃발처럼 바람에 나부끼며 살아가는 사람. 그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에 하나둘 슬픈 눈금이 새겨집니다. 세월이란 어쩌면 연민의 측량 도구. 안타까움의 눈금들로 채우며 함께 보낸 시간만큼 포용의 길이를 늘이는 줄자 같은지도 모릅니다. 외출한 당신이 무사히 돌아와 저 문을 열고 성큼 들어오는 모습을 떠올릴 때, 그제야 안심하며 빨래 정리를 마칠 수 있습니다.

심약한 배우자가 된 것은 어쩌면 직업 탓인지도 모르지요. 사람이 죽으면 부름을 받고 그 집을 치우는 일을 하는 청소부는 사소한 것도 눈을 크게 뜨고 봅니다. 상상에 시달리는 것이 직업병입니다. 인간이란 어느 날 솥뚜껑을 보고도 애먼 생명체로 오인할 수 있는 존재. 죽은 자의 집에 도착해서는 침대 밑에 무심코 떨어진 수건 한장조차 죽음과의 연관성을 의심하며 함부로 손을 뻗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 작은 옷의 어깨에서 당신 삶을 얽매는 하루하루의 속박과 고단함을 바라봅니다.

어쩌면 인간이란 갇혀서 살아가는 존재 같습니다. 고인의 집에서, 생물은 온데간데없고 정물만 남아서 침묵에 잠긴 집안을 둘러보며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아파트에 갇히고, 방구석에 갇히고, 전세와 자가에 갇히고, 명분과 실리,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소망에 갇히고, 결핍과 채우려는 욕망에 갇힌 채 살아간다고. 제가 속박됐다고 느끼니 남들도 그러려니 뒤집어씌우는 수작이지요. 하지만 가슴에 손 얹고 말해보세요. 여기 누구 한 사람 갇히지 않은 자 있나요? 풍요로운 자와 가진 것이라곤 빚밖에 없는 자, 세상에 이름을 떨친 자와 유명무실한 자, 홀로 살아가기 급급한 자와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자….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우리 모두 예외 없이, 먹고살기라는 가장 원초적인 구태의연함을 지속하기 위해 엇비슷한 속박과 한계 속에서 살아가지 않나요?

주인 잃은 집에는 수많은 옷이 장롱에 갇힌 채 꺼내어 주길 기다립니다. 저마다 정해진 길이와 둘레를 가진 옷들은 더는 육체를 속박할 수 없지요. 넥타이와 허리띠, 머플러 따위가 이제는 떠난 자를 옥죄고 동여맬 수 없습니다. 생명 있는 존재란 결국 죽음으로 해방되는지, 아직 살아 있는 저로선 알 리 없습니다.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해방될 때쯤 우리가 비로소 자유로워지려나? 가끔 그런 순환논증 같은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조차 내려놓을 때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불가의 오랜 가르침처럼.

갇힌 사람은 해방되고 싶고, 술은 그런 인간을 비교적 싼 값에 잠시나마 풀어줍니다. 그래서 불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술이 잘 팔리는지도 몰라요. 어디에 갇혔는지는 몰라도 나를 가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속박이 술을 부릅니다. 술을 핑계로 고백하고, 진심을 말하고, 숨겨온 진짜 얼굴을 밝히고, 더는 답답해서 못 참겠다며 웃통마저 벗어던지고… 그러나 자유에 이르려면 술 한두잔으로는 턱도 없어요. 임시진통제 처방만으론 퇴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해방엔 좀 더 본질적인 구원이 필요합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오늘도 무탈하게 귀가하면 좋겠습니다. 속박된 해방전선의 일원으로 언젠가 우리가 함께 해방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빨래를 개는 장기수의 심정으로 이 글을 쓰면서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오늘 우리 하루가 무사하기를! 어제보다 덜 아프기를! 구원은 여전히 저 구름 너머, 아득히 먼 곳에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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