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 선 한국 대통령..자기도취 말고 얻은 게 무엇인가

한겨레 2022. 5. 2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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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국을 처음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맨 왼쪽)이 윤석열 대통령(왼쪽 둘째)과 지난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왼쪽 셋째)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돌아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상읽기]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대통령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21일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에 “미국이 북한의 핵 도발에 핵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 말은 정상회담 선언문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핵, 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 능력을 포함하여 가용한 모든 범주의 방어 역량을 사용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을 확인했다”는 대목을 지칭한다.

아무것도 새로울 것이 없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한다는 걸 동맹의 불변 가치로 표방해왔다. 핵우산이란 한국과 같은 동맹국이 핵으로 공격받을 때 미국이 핵으로 보복해준다는 뜻이다. 50년 넘게 미국이 제공해준다는 핵억지력을 이제 와서 처음이라고 말하는 건 빈약한 정상회담 성과를 과대 포장하려는 의도로 나온 발언이다.

‘흡연구역’이라는 표시판을 ‘담배를 피우는 곳’ 이라고 간판을 바꿔 달고 “처음으로 담배라는 표현을 썼으니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연기를 피우는 주범인 담배를 선명하게 명시했으니 상당한 성과 아니냐고 우기면 할 말이 없다.

대통령실이 강조하는 “확장억제 공약 재확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의 비전 공유”라는 성과도 이전 정부의 동맹외교의 연장선이다. “미국의 전략자산을 시의적절하게 배치한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협의하겠다”는 이야기다. 굳이 변화를 찾자면 한-미 연합훈련을 실병 기동훈련으로 확장한다는 건데, 이미 문재인 정부 말기에 미국으로부터 다짐받아 놓은 약속이다. 이미 전임 정부, 또 그 전임의 전임 정부 시절부터 다 나왔던 오래된 어음이다.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미국은 한반도 안보를 증진하는 새로운 약속을 해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나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바쁘다고 오지도 않았다. 그러니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 분야의 의제들은 일찌감치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반면 예년의 관례와 달리 미국 대통령을 수행한 장관급 인물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전자 방문에는 지금은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영입된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가 수행했다. 이어 5대 재벌 대표와 6대 경제단체장이 참석하는 만찬, 현대자동차의 100억달러 미국 투자 발표 등 짧은 방한 일정이 정상회담을 제외하곤 전부 비즈니스로 채워졌다. 진실을 말하자면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 정부가 주도하는 외교 행사가 아니라, 이미 정부의 외교 능력을 초월한 한국 대기업과 미국 정부 간의 정상회담이었다.

부지런히 바이든의 비즈니스를 수행한 한국 정부와 대통령실은 들러리를 섰다. 이렇게 미국 대통령이 착실하게 한국으로부터 실익을 거두는 동안, 바이든을 수행한 미국 기업인 중 한국에 투자 의향을 밝힌 당사자는 넷플릭스뿐이다. 1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면서도 망 사용료를 한푼도 내지 않아 한국 재판에 회부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1억달러는 투자라기보다 우리 정부에 “잘 봐달라”는 일종의 추파에 불과하다.

이렇게 국부가 유출되는 동안 듣기 좋은 몇마디에 혹해서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안쓰럽다. 결국 성사되지 못한 한국의 쿼드 가입에 대해서도, 미국 대통령은 “지지한다”는 말 한마디로 한국 정부를 황홀경에 빠뜨렸다. 정상회담으로 무언가 국격이 상승한다는 자기도취, 더욱 커진 대한민국의 존재감으로 도파민이 펑펑 분비되었을지 모르나, 이건 속된 말로 ‘발려버린 회담’이다.

굳이 성과를 찾자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에 우리가 창립국으로 참여한 것인데, 여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면 부작용이 따른다. 이미 정상회담 전부터 중국은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한국의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 요소수 사태에서 우리는 중국이 밸브 하나 잠그면 마비되는 핵심 물자가 무려 1700개라는 사실을 발견한 바 있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에 경도되면 이 물자를 한국을 압박하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음을 경고한 셈이다. 이게 바로 ‘공급망의 위기’다. 제대로 결산해보자. 도대체 이 정상회담에서 미국 옆에 가까이 서 있으면 왠지 국격이 상승한다는 자기도취 말고 우리가 얻은 게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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