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어떤 의제를 지켜나갈 것인가

한겨레 2022. 5. 2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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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의 눈]한겨레가 한국 언론사 최초로 기후변화팀을 꾸리고 2년이 흘렀다. 한겨레가 기후 의제를 지키는 데에는 이 2년이 너무 긴 시간이었을까. 기후변화팀을 처음 꾸린 언론사라는 말이 민망하게도 한겨레 기후 보도는 최근 많은 한계를 보인다.

[열린편집위원의 눈] 오동재 | ​기후솔루션 연구원

2014년 <제이티비시>(JTBC) 세월호 참사 보도를 기억한다. 혹자는 참사가 나고 제이티비시 보도국이 데스크를 팽목항으로 옮겨 구조 작업을 지근거리에서 보도한 것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게 있다. 이 방송사는 사고 이후 7개월 가까이 거의 매일 주요 방송 시간대에 팽목항발 기사를 한 꼭지씩 다루며 세월호 수색 작업 보도를 꾸준히 이어갔다. 어떤 대형 사건도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이 줄어 기사 가치가 떨어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말이다. 그런데도 세월호 뉴스를 계속 끌고 나간 제이티비시는 결과적으로 같은 기간 지상파 3사를 제치고 신뢰받는 방송 1위로 올라섰다.

2020년의 <한겨레>도 기억한다. 우리가 마주한 기후변화라는 전례 없는 위기 앞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해 한국 언론사 최초로 기후변화팀을 꾸렸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시작하자 다른 언론사들도 경쟁적으로 기후변화팀을 꾸렸다. 자연히 수많은 기후 보도들이 이어졌다. 한국의 기후 저널리즘 역사에서 한겨레가 처음 꽂았던 깃발은 그래서 더욱 귀중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어찌 보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2년이 한겨레가 기후 의제를 지키는 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을까. 기후변화팀을 처음 꾸린 언론사라는 말이 민망하게도 한겨레 기후 보도는 최근 많은 한계를 보인다.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지난 두달치 한겨레 1면 기사와 사설 326건을 살펴봤다. 기후·에너지 분야는 단 1건에 불과했다. 기사나 칼럼은 대부분 정치 및 법조 분야(190건)에 몰려 있었다. 다른 언론사들보다 그 차이가 컸다.

신문 지면을 요즘 누가 읽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전히 지면의 구성은 언론사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주요한 지표다. <조선일보>가 지난 4월에만 8건의 기후·에너지 관련 1면 기사와 사설을 실었던 걸 본다면 한겨레의 관심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한겨레 지면에 실린 개별 기사들의 면면을 보면 문제는 더 명료해진다. 지면 기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기후변화팀 기사는 좀처럼 선택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기후·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신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다른 부서에서는 기후·에너지 분야 전문가가 아닌 경제·산업 전문가나 정치인 등을 주요 취재원으로 기후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아 기후변화팀과 논조가 상반되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기도 한다.

한겨레가 의제를 지키지 못하고 방황하는 동안에도 기후 이슈는 전방위적으로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 중이다. 지난해 6월 미국 서부를 시작으로 전 지구를 휩쓸었던 폭염이 올해는 한달이나 일찍 인도를 덮치기 시작했다. 지난달 인도 델리는 최고 기온이 49.2도까지 기록하며 기온 관측 이래 월평균 최고 기온 신기록을 찍었다. 당장 북반구가 이번 여름에 어떤 피해를 또 마주할지 아직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현재의 기후위기 상황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보고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빨라지는 대응도 한국 사회를 점점 덮쳐오는 중이다. 지난 3월 시행된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한국의 산업은 본격적인 전환을 시작해야 하며, 유럽의 탄소국경세는 도입 시기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 여전히 화석연료 산업을 확대 중인 한국은 앞으로 대량의 좌초자산(사업 여건 변화로 수익이 나지 않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자산) 위험을 떠안을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른다.

기후 문제가 단순히 과학과 기상의 영역으로만 남았던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후 문제는 지금보다 더 산업과 정치의 영역에 결부될 수밖에 없는 이슈로 발전할 것이다. 언론의 기민한 대응이 없다면 그 변화들이 초래할 사회적인 갈등을 해결할 기회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대혼돈의 뉴미디어 시대에서도 기성 언론이 아직 할 수 있는 역할로 전문가들은 의제 설정 기능을 꼽는다. 세월호 당시 제이티비시 보도를 이끌던 손석희 전 앵커는 더 나아가 의제를 세우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의제를 꾸준히 지켜나갈 때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서 기성 언론이 설 자리가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그 질문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한겨레는 어떤 의제를 지켜낼 것인가. 어떤 공익적 가치를 지켜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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